명옥진

명옥진(明玉珍, 1329~1366)은 중국 원나라 말기 농민 봉기군인 홍건적의 수령이자, 사천 지방을 중심으로 세워진 대하(大夏)의 건국자이다. 호북성 수현 출신인 그는 본래 성이 민(旻)씨였으나, 명교(明敎)를 신봉하게 되면서 성을 명(明)으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원나라의 통치력이 약화된 혼란기에 군사를 일으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인물이다.

그는 1353년 서수휘(徐壽輝)가 이끄는 홍건적 세력에 합류하여 뛰어난 무용을 발휘하였다. 서수휘의 지휘 아래 장강 상류로 진격한 명옥진은 1357년 사천 지역을 점령하며 독자적인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후 서수휘가 부하인 진우량(陳友諒)에게 살해당하자, 진우량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사천에서 자립하여 독자적인 정권 수립에 박차를 가하였다.

1362년 명옥진은 중경(重慶)을 수도로 정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대하(大夏),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선포하였다. 그는 통치 기간 동안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과거 제도를 실시하고, 세금을 낮추어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또한 검소함을 몸소 실천하며 내정을 다졌기에 사천 지역 백성들로부터 높은 신망을 얻었다.

그러나 명옥진은 황위에 오른 지 불과 5년 만인 1366년에 38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어린 아들 명승(明昇)이 황위를 계승했으나, 당시 급격히 세력을 키우던 주원장의 명나라 군대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1371년 대하는 명나라에 항복하며 건국 9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하가 멸망한 후 명승과 그의 어머니 팽씨를 비롯한 일가는 명나라 주원장의 배려로 고려에 망명하였다. 당시 고려 공민왕은 이들을 환대하며 양현고의 전지를 내려 거처를 마련해주었으며, 이들이 한국 서촉 명씨(西蜀 明氏)와 연안 명씨의 시조가 되었다. 오늘날 명옥진은 한국 명씨 문중의 원시조로 추앙받고 있으며, 1982년 중국 중경에서 발견된 그의 능묘인 예릉(睿陵)은 한중 친선과 역사적 연대를 확인하는 중요한 유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