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년은 서기 357년이며, 육십갑자로는 정사년(丁巳年)에 해당한다. 로마 제국에서는 콘스탄티우스 2세의 통치기였으며, 중국은 5호 16국 시대의 극심한 분열기였고,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정립하던 삼국 시대였다. 이 해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과 서쪽 모두에서 군사적 승리와 정변을 통해 새로운 권력자가 부상하거나 기존의 권위가 과시된 시기로 기록된다.
한반도 역사, 특히 고구려사에서 357년은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해다. 황해남도 안악군에 위치한 대형 벽화 고분인 '안악 3호분'의 연대를 확정 짓는 묵서명(墨書銘)이 바로 이 해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무덤 내부의 명문에는 영화(永和) 13년, 즉 357년에 무덤이 만들어졌다는 기록과 함께 무덤의 주인공을 전연(前燕)에서 망명한 장수 동수(冬壽)라고 밝히고 있다. 학계에서는 명문 그대로 동수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와 무덤의 거대한 규모 및 왕릉급 형식을 근거로 고구려 고국원왕의 무덤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어떠한 경우든 357년은 고구려가 요동 지역의 혼란 속에서 중국계 유이민을 받아들이거나 선진 문화를 수용하며 국력을 다지던 시기였음을 시사한다.
중국 대륙에서는 5호 16국 시대의 판도를 바꿀 중요한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관중 지방을 차지하고 있던 전진(前秦) 왕조에서 폭군으로 알려진 2대 황제 부생(苻生)이 살해당하고, 그의 사촌인 부견(苻堅)이 357년에 제위에 올랐다. 부견은 즉위 직후 연호를 영흥(永興)으로 바꾸고, 한족 출신의 명재상 왕맹(王猛)을 중용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357년 부견의 집권은 전진이 훗날 화북 지방을 일시적으로 통일하고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하게 되는 결정적인 기점이 되었다.
로마 제국 서부 전선에서는 제국의 국경을 위협하던 게르만족을 상대로 한 역사적인 승리가 있었다. 당시 로마의 부제(Caesar)였던 율리아누스(훗날의 율리아누스 황제)는 갈리아 지역을 침공한 알라만족 대군을 맞아 현재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인근에서 전투를 벌였다. 357년 8월에 벌어진 이 '스트라스부르 전투'에서 율리아누스는 3배가 넘는 적의 병력 차이를 극복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로 율리아누스는 라인강 방어선을 확고히 하고 병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으며, 이는 훗날 그가 콘스탄티우스 2세에 맞서 황제를 칭하게 되는 정치적·군사적 기반이 되었다.
또한 357년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가 로마 시를 방문한 해로서 문화사적 의의를 지닌다. 콘스탄티우스 2세는 로마 제국의 수도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간 이후, 로마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하여 성대한 개선식을 거행했다. 그는 이를 기념하여 이집트에서 가져온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막시무스 경기장에 세웠는데, 이것이 현재 로마에 있는 라테라노 오벨리스크다.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는 이 방문을 상세히 기록하여 당시 로마의 웅장함과 황제의 위엄을 후세에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