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규오(Richard Guhr, 1873~1956)는 독일의 화가, 조각가이자 미술 교수였다. 그는 슈베린에서 태어나 베를린과 드레스덴에서 미술 교육을 받았으며, 생애 대부분을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보냈다. 규오는 상징주의와 후기 낭만주의 화풍을 계승한 예술가로 평가받으며, 특히 거대하고 웅장한 기념비적 성격의 작품을 다수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육자로서 규오는 드레스덴 예술 아카데미에서 오랜 기간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의 제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독일 현대 미술의 거장 오토 딕스가 있다. 비록 오토 딕스가 훗날 신즉물주의라는 독자적인 예술적 방향을 확립하며 스승의 전통적인 화풍과 결별했으나, 규오는 딕스의 초기 예술적 기량을 형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초를 닦아준 인물로 기록된다.
규오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는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과 철학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었다.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와 북유럽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영웅적이고 신화적인 서사를 시각화하는 데 주력했다. 그의 회화와 조각 작품은 고전적인 비례미와 극적인 연출을 특징으로 하며, 이를 통해 단순한 형태의 재현을 넘어선 숭고함과 정신적 고양감을 표현하고자 시도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조각적 업적은 드레스덴 근교 리베탈러 그룬트에 세워진 리하르트 바그너 기념비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바그너 기념상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규오는 1911년경에 이 거대한 기념비를 처음 구상하고 디자인했으나, 실제 설치 작업은 수십 년이 지난 1933년에야 완료되었다. 이 기념비는 조각가로서 그의 뛰어난 조형적 역량과 바그너를 향한 일생의 헌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규오의 예술적 평가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 그의 보수적이고 기념비적인 양식은 일정 부분 국가사회주의 체제가 선호했던 미학적 기준과 부합하는 면이 있었기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평가 과정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19세기 독일 아카데미즘의 전통을 20세기로 연결한 기술적으로 정교한 예술가였으며, 그가 남긴 작품들은 독일 근대 미술사에서 기념비적 조각과 상징주의 회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