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토 뤼티(Risto Heikki Ryti)는 핀란드의 법률가, 경제학자이자 정치가로, 1940년부터 1944년까지 제5대 핀란드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특히 겨울 전쟁과 계속 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핀란드를 이끈 핵심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핀란드가 소련의 강력한 군사적 압박 속에서도 독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외교적, 정치적 역량을 발휘한 지도자이다.
1889년 핀란드 후이티넨에서 태어난 그는 헬싱키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영국에서 해상법을 공부하며 국제적인 감각을 익혔다. 귀국 후 법조계에서 활동하다가 정계에 입문했으며, 특히 금융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1923년부터 1940년까지 핀란드 은행 총재를 지내며 핀란드의 경제적 안정과 통화 정책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러한 전문성은 그가 총리와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 국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그는 핀란드의 생존을 위해 독일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1944년 소련의 대공세가 시작되자 그는 국가의 붕괴를 막기 위해 나치 독일과 '뤼티-리벤트로프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핀란드가 소련과 단독 강화를 맺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독일로부터 군사 지원을 받는 내용이었으나, 그는 이를 국가 간 공식 조약이 아닌 대통령 개인의 서약 형태로 처리함으로써 훗날 핀란드가 독일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소련과 평화 협상을 벌일 수 있는 법적 퇴로를 마련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소련의 요구에 따라 열린 전범 재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핀란드 여론은 그를 국가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오명을 뒤집어쓴 희생양으로 보았으며, 건강상의 이유로 1949년 사면될 때까지 수감 생활을 했다. 1956년 사망한 이후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핀란드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며, 오늘날 그는 국가의 독립을 수호한 애국자로 존경받고 있다.
'리스토(Risto)'라는 명칭은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등 북유럽 지역에서 흔히 사용되는 남성 이름이기도 하다. 이는 그리스어 이름인 '크리스토포로스(Christophoros)'에서 유래하였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은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핀란드 문화권에서는 성인 크리스토포로스의 축일인 3월 15일을 '리스토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는 전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