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2세

로버트 2세(Robert II, 1316~1390)는 스코틀랜드의 국왕이자 스튜어트 왕가의 시조이다. 그는 1371년부터 1390년까지 재위하였으며, 로버트 1세(로버트 더 브루스)의 외손자로서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왕실의 세습 집사인 월터 스튜어트였고, 어머니는 로버트 1세의 딸인 마조리 브루스였다. 데이비드 2세가 후사 없이 사망함에 따라 브루스 가문의 직계가 끊기자, 로버트 2세가 왕위에 오르며 스코틀랜드 역사의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

왕위에 오르기 전, 로버트 2세는 오랜 기간 동안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추정 상속인으로서 활동하였다. 그는 외삼촌인 데이비드 2세의 치세 동안 여러 차례 섭정을 맡으며 국정을 운영하였으나, 두 사람의 관계는 항상 원만하지 않았다. 특히 데이비드 2세가 잉글랜드와의 협상을 통해 잉글랜드 왕실에 스코틀랜드 왕위를 넘기려 했을 때, 로버트 2세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며 자신의 권리를 방어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그는 귀족들과의 결속을 다지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1371년 55세의 늦은 나이로 즉위한 로버트 2세의 통치기는 대체로 안정적이었으나, 그의 통치 방식은 강력한 중앙 집권보다는 귀족들과의 타협과 분권에 기초하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들을 스코틀랜드의 주요 백작령에 배치하여 가문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려 했다. 그러나 재위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건강이 악화되고 시력이 감퇴하자, 국정 운영의 주도권은 점차 그의 아들들에게 넘어갔다. 1384년에는 장남인 캐릭 백작(훗날의 로버트 3세)이, 이후에는 차남인 파이프 백작(올버니 공작)이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하는 수호자로 임명되었다.

로버트 2세의 재위 기간 동안 스코틀랜드는 프랑스와의 '오래된 동맹(Auld Alliance)'을 갱신하며 잉글랜드에 대항하는 외교 정책을 유지하였다. 비록 왕 본인은 직접적인 전쟁보다는 평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국경 지대의 귀족들은 잉글랜드와 빈번한 소규모 전투를 벌였다. 1388년의 오터번 전투는 이 시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사이의 대표적인 충돌로 꼽힌다. 이러한 군사적 긴장 속에서도 로버트 2세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성을 유지하며 왕조의 기반을 다지는 데 주력하였다.

로버트 2세는 1390년 던도널드 성에서 사망하였으며 스쿤 수도원에 매장되었다. 그는 두 번의 결혼과 여러 첩을 통해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이는 스튜어트 가문이 스코틀랜드의 지배적인 가문으로 자리 잡는 원동력이 되었다. 비록 과거의 역사가들로부터는 통치력이 약한 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현대에 들어서는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왕조를 성공적으로 교체하고 가문의 번영을 꾀한 현실적인 통치자라는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의 사후 장남인 로버트 3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