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골주의(Gaullism)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자유 프랑스를 이끌고 이후 프랑스 제5공화국을 수립한 샤를 드골의 정치적 신념과 실천 양식을 의미한다.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교한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프랑스의 국가적 위상 회복과 주권 수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일종의 국가주의적 태도에 가깝다. 드골주의는 전쟁 직후 쇠퇴한 프랑스의 국력을 재건하고, 강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시대적 요구 속에서 형성되었다.
드골주의의 핵심 가치는 프랑스의 ‘위대함(Grandeur)’과 ‘독립성’에 있다. 드골은 프랑스가 세계 무대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외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타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국방력 확보를 강조했으며, 1960년대 프랑스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는 이러한 자립 국방 의지의 핵심적 결과물이었다. 그는 프랑스가 강대국 간의 역학 관계에 휘말리지 않고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걸어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했다.
대외 정책 면에서 드골주의는 실용적인 민족주의의 성격을 띤다. 드골은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통합군 체제에서 탈퇴하며 유럽 내 프랑스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했다. 또한 유럽 통합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개별 국가의 주권을 침해하는 초국가적 기구보다는 주권 국가들의 연합체인 ‘조국들의 유럽’을 지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영국이 미국의 영향력을 유럽 내로 끌어들일 것을 우려하여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을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다.
정치 체제 측면에서 드골주의는 강력한 대통령제를 옹호한다. 드골은 제4공화국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의회 내 정당 간의 극심한 정쟁과 그로 인한 행정부의 무능을 비판했다. 1958년 그가 수립한 제5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과 국가 비상사태 시의 전권 행사 등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다. 또한 국민투표라는 직접 민주주의적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정당 정치의 중재 없이 지도자가 국민으로부터 직접 정당성을 부여받는 통치 방식을 선호했다.
드골주의는 드골의 퇴임 이후에도 프랑스 정치 지형에 깊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르주 퐁피두, 자크 시라크 등 후대 우파 정치인들은 드골주의의 유산을 계승하며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신드골주의’를 발전시켰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구체적인 외교 및 경제 정책은 변모해 왔으나, 국가의 자주성 유지와 강력한 지도력에 기반한 질서 확립이라는 드골주의적 가치는 오늘날까지 프랑스 정치 문화의 중요한 근간으로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