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세이가쿠엔은 일본 미에현에 본거지를 두었던 학교법인으로, 설립자 시모다 슈지의 교육 철학에 따라 운영된 사립 교육 기관이다. 이 학교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 내에서 극단적인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악명을 떨쳤다. 당시 일본 사회의 교육 열풍과 비행 청소년 문제가 맞물리며, 통제 불능의 학생들을 갱생시킨다는 명목하에 군대식 이상의 가혹한 규율을 적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학교의 일과는 매일 새벽 4시경 시작되었으며, 학생들은 기상 직후부터 전력으로 구보를 하거나 큰 소리로 교가를 제창해야 했다. 닛세이가쿠엔의 상징과도 같았던 '전력 청소'는 학생들의 정신 수양을 목적으로 행해졌다. 학생들은 맨손과 걸레를 사용해 복도와 바닥을 빛이 날 때까지 닦아야 했고, 이 과정에서 쉴 새 없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동작을 통일해야 했다. 만약 동작이 느리거나 목소리가 작으면 교사와 선배들로부터 즉각적인 체벌이나 기합이 가해졌다.
학생들은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생활을 했다. 텔레비전 시청, 신문 탐독, 간식 섭취는 물론 이성 교제도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편지 왕래조차 학교 측의 검열을 거쳤다. 이러한 폐쇄적 환경은 학생들 간의 엄격한 서열 구조를 만들었고, 상급생이 하급생을 관리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당시 이 학교는 일반 학교에서 퇴학당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비행 청소년들을 수용하는 '최후의 보루'로 인식되었으나, 실제로는 과도한 인권 침해의 현장이었다.
유명 코미디언 콤비 '다운타운'의 하마다 마사토시는 이 학교 출신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방송을 통해 증언한 닛세이가쿠엔의 실상은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배고픔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학교를 탈출하려 했던 일화들은 학교의 가혹한 실태를 방증한다. 실제로 학교 내부에서는 고된 노동과 가혹 행위를 견디지 못한 학생들의 탈주 사건과 자살, 의문의 사망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며 사회적인 지탄을 받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일본 내 교육 환경의 변화와 인권 의식의 신장으로 인해 닛세이가쿠엔은 점차 과거의 폭력적인 훈육 방식을 포기하고 개혁에 착수했다. 학교 법인명과 산하 학교들의 명칭을 아오야마 고등학교 등으로 변경하고, 현재는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일반적인 사립 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닛세이가쿠엔이라는 이름은 일본 교육사에서 국가주의적 집단 교육과 억압적인 스파르타식 훈육이 낳은 극단적인 사례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