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는 조선 중기의 인물로,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의로운 여인이다. 본관은 신안이며, 성은 주씨(朱氏)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하나, 전라북도 장수에서 태어나 진주성 전투 당시 관기(官妓)로서 왜장을 유인해 함께 투신했다는 기록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민간에서는 그녀가 본래 양반 가문의 딸이었으나 가문의 몰락으로 인해 관기가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조선군과 민관은 왜군에 맞서 치열하게 항전하였으나, 결국 성이 함락되고 수많은 군사와 백성이 살육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왜군은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진주의 관기들이 동원되었다. 논개는 나라의 원수를 갚고 성을 지키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잔치에 참여하여 기회를 엿보았다.
논개는 화려한 옷을 입고 남강의 가파른 바위 위로 왜장을 유혹했다. 그녀는 왜장이 다가오자 그의 허리를 껴안고 그대로 남강에 몸을 던져 함께 순국하였다. 당시 그녀는 왜장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열 손가락 마디마디에 가락지를 끼어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녀가 투신한 바위는 훗날 의로운 바위라는 뜻의 '의암(義岩)'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바위 측면에는 '의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논개의 희생은 당시 조선 사회에 큰 감동을 주었으며, 그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노력이 후대에 이어졌다. 1740년 경상도 병마절도사 남덕하의 건의로 진주에 의기사(義妓祠)가 세워져 그녀의 영정을 모시게 되었고, 고향인 장수군에도 그녀를 기리는 의암사(義巖祠)가 건립되었다. 비록 신분상의 한계로 인해 한동안 공식적인 기록에서 소외되기도 했으나, 유몽인의 '어우야담' 등을 통해 그녀의 행적이 기록되면서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날 논개는 임진왜란 당시 민중의 항쟁 의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매년 진주에서는 논개의 애국심을 기리는 '진주논개제'가 개최되며, 그녀의 숭고한 정신은 문학,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어 한국인의 역사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