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0년

740년은 8세기 중반의 시기로, 동아시아와 서아시아 및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중요한 정치적 변동과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 해이다. 신라에서는 효성왕 4년에 해당하며, 당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히 이어지던 시기였다. 당시 신라는 통일 이후 안정된 사회 구조 속에서 불교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었으나, 중앙 귀족들 사이의 권력 다툼은 수면 아래에서 지속되고 있었다. 신라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문물을 수용하며 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데 주력했다.

중국의 당나라는 현종의 치세인 개원(開元) 28년으로, 이른바 '개원의 치'라고 불리는 태평성대의 정점에 있었다. 당나라는 서역과의 교역을 통해 국제적인 제국으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장안은 세계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서는 지방 절도사들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훗날 닥쳐올 안사의 난과 같은 혼란의 씨앗이 조금씩 잉태되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나라 시대 쇼무 천황의 통치 아래에서 '후지와라노 히로츠구의 난'이 발생하였다. 이는 규슈 지역에서 세력을 가졌던 후지와라노 히로츠구가 당시 중앙 정부의 실권자였던 기비노 마키비와 겐보를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반란이다. 이 반란은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한 끝에 진압되었으나, 정치적 불안을 느낀 쇼무 천황은 수도를 헤이조쿄에서 구니쿄로 옮기는 등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남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에서는 비잔티움 제국과 우마이야 왕조 사이의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740년 아크로이논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레오 3세와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5세는 이슬람 군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는 이슬람 세력의 아나톨리아 진출을 저지하고 비잔티움 제국의 생존을 보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우마이야 왕조의 군사적 팽창세에 급제동을 걸었다.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우마이야 왕조에 저항하는 베르베르 대반란이 절정에 달했다. 아랍 통치자들의 과도한 세금 징수와 차별 정책에 반발한 베르베르인들은 카와리주 교파의 가르침을 수용하며 거세게 저항했다. 이 반란은 마그레브 전역으로 확산되어 우마이야 왕조의 통제력을 약화시켰고, 이후 이슬람 제국이 서방 영토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고 여러 지방 정권으로 분열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자연재해 측면에서도 740년은 기록적인 해였다.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서는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여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비롯한 도시의 주요 건축물들이 크게 파손되었다. 이 지진은 제국 전역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성상 파괴 운동을 전개하던 레오 3세는 이를 신의 징벌로 해석하여 자신의 종교 정책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기도 했다. 이처럼 740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존 질서가 요동치고 새로운 변화의 기운이 감돌던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