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빌 체임벌린(Arthur Neville Chamberlain, 1869~1940)은 영국의 보수당 정치인으로,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영국의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의 긴장 상황 속에서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를 상대로 유화 정책을 펼친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버밍엄 시장을 지낸 조지프 체임벌린의 아들이자 외무장관을 지낸 오스틴 체임벌린의 이복동생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기업인으로서 활동하며 행정적 역량을 쌓았다.
체임벌린의 총리 재임 초기 유럽은 독일의 재무장과 영토 확장 야욕으로 인해 전쟁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기억하며 또 다른 대규모 전쟁을 막기 위해 독일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고 외교적으로 타협하는 유화 정책(Appeasement Policy)을 추진했다. 이 정책의 정점은 1938년 체결된 뮌헨 협정이었다. 당시 그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주권을 희생시키면서 수데텐란트를 독일에 할양하는 데 합의했으며, 귀국 후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를 확보했다고 선언하여 대중의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히틀러는 뮌헨 협정의 약속을 어기고 1939년 체코슬로바키아 전역을 점령했으며, 이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체임벌린의 외교적 노력을 수포로 만들었다. 이에 체임벌린은 독일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으나, 전쟁 초기 지도력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1940년 노르웨이 전역에서의 작전 실패는 그의 정치적 입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으며, 여당 내에서도 그의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한 강한 불신임이 제기되었다.
결국 1940년 5월, 체임벌린은 총리직에서 사임하고 윈스턴 처칠에게 정권을 이양했다. 사임 후 그는 처칠 내각의 추밀원 의장으로서 국정에 참여했으나, 지병인 암이 악화되어 같은 해 11월에 사망했다. 역사적으로 그는 평화를 갈구했던 정치가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독재자의 야욕을 과소평가하여 전쟁의 규모를 키웠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 복합적인 평가의 대상이다. 최근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가 유화 정책을 통해 영국의 재무장 시간을 벌었다는 재평가를 시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