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전투

남대문 전투는 19078월 1일,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반대하여 서울 남대문(숭례문) 일대에서 한국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시가전이다.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을 구실로 일제는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의 부수 각서에 따라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이 결정되었으며, 이는 사실상 국가 방위력의 소멸과 주권의 완전한 상실을 의미하는 조치였다.

군대 해산 당일인 8월 1일 아침, 시위 제1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 참령은 군대 해산 명령에 분개하며 "군인은 나라를 지킬 뿐이며, 남에게 나라를 내어줄 수 없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권총으로 자결하였다. 박승환의 자결 소식은 인근 부대 군인들에게 즉각 전파되었으며, 이에 격분한 제1연대 제1대대와 제2연대 제1대대 병사들은 무기고를 개방하여 무장한 뒤 해산 명령에 불응하고 일본군과 전면전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전투는 주로 서소문과 남대문 인근의 시위대 병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한국군은 병영의 지형적 이점과 건물 벽면을 방벽으로 삼아 일본군에 맞서 완강히 저항하였다. 일본군은 보병 제13연대를 주축으로 하는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한국군 병영을 포위하고 공격을 감행하였다. 당시 한국군은 탄약이 부족하고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 속에서도 정규군으로서의 훈련된 전술을 발휘하며 수 시간 동안 치열한 교전을 이어갔다.

일본군은 숭례문 성벽 위에 기관총을 거치하고 한국군 병영 내부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며 화력의 우세를 점하였다. 당시 도입된 근대식 무기인 맥심 기관총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한국군의 저항은 점차 한계에 부딪혔으며, 많은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결국 오후 무렵 일본군이 병영 내부로 진입하여 점령하면서 전투는 한국군의 패배로 종결되었다.

남대문 전투는 비록 일제의 화력에 밀려 패배하였으나, 대한제국 정규군이 일제의 침략에 맞서 조직적으로 저항한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무기를 소지한 채 전국 각지로 흩어져 의병 운동에 합류하였다. 이를 계기로 의병 세력은 정규군 수준의 전투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단순한 저항을 넘어선 '정미의병'이라는 거대한 구국 전쟁으로 발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