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용서(具容書, 1899~1986)는 대한민국의 금융인이자 관료로, 한국 금융 현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경상남도 진주 출생인 그는 일본 도쿄상과대학(현 히토쓰바시대학)을 졸업한 뒤 조선은행에 입사하여 금융계에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은행의 주요 지점에서 근무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고, 해방 이후 한국 금융계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해방 직후 구용서는 조선은행 부총재를 거쳐 1950년 6월 대한민국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출범할 때 초대 총재로 취임했다. 그는 한국은행법의 제정과 중앙은행 시스템의 정착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국가 통화 정책의 근간을 세웠다. 특히 신생 국가였던 대한민국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안정적인 금융 질서를 확립하는 데 주력했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에는 한국은행 총재로서 긴박한 상황에 대처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금괴와 은괴를 안전하게 남쪽으로 이전하는 데 성공했으며, 적 치하에서 유출된 화폐로 인한 경제 혼란을 막기 위해 신속하게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이러한 조치는 전시 경제의 붕괴를 방지하고 국가 재정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한국은행 총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그는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다양한 공직을 역임했다. 한국산업은행 총재로서 전후 복구 사업에 필요한 산업 자금을 공급하는 데 힘썼으며, 대한석탄공사 사장을 거쳐 1958년에는 제10대 상공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상공부 장관 재임 시절에는 전후 산업 재건과 수출 기반 마련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며 국가 경제의 성장을 도모했다.
구용서는 대한민국 금융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금융과 행정 전반에 걸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식민지 시대의 금융 체계에서 벗어나 독립 국가에 걸맞은 중앙은행 제도를 안착시키는 데 헌신했다. 그의 생애와 활동은 한국 근현대 금융사의 성립 과정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으며, 전란과 혼란기 속에서도 경제적 기틀을 지켜낸 공로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