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효원(高孝源, 1849~1916)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기에 활동한 유학자이자 항일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자는 치부(致富), 호는 호산(湖山)이다. 전라북도 옥구(현재의 군산시) 출신으로, 평생을 성리학 연구와 위정척사 운동에 헌신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어린 시절부터 가학을 이어받아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당대의 이름난 유학자였던 간재 전우(田愚) 등과 교류하며 학문적 깊이를 더했다. 그는 전통적인 유교 가치관을 수호하는 것을 지식인의 사명으로 여겼으며, 외세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시기에 유림의 항일 의지를 결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효원은 이를 민족적 치욕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분개하였다. 그는 면암 최익현이 호남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호응하여 군량을 조달하고 격문을 배포하는 등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비록 직접적인 무장 투쟁의 일선에 서기보다는 후방에서의 지원과 이론적 토대 마련에 집중했으나, 그의 활동은 지역 사회의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회유책의 일환으로 이른바 '은사금'을 지급하려 하자, 고효원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며 선비의 절개를 지켰다. 그는 일제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은거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제자들에게 민족정신과 유교적 도덕 가치를 가르치며 국권 회복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당시 지역 유림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그의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고효원의 항일 정신과 공훈을 기려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효원의 삶과 학문은 단순한 유학자의 생애를 넘어, 국난의 시기에 지식인이 취해야 할 도덕적 자세와 실천적 저항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