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마(禮馬)는 조선 시대 국가의 주요 의례인 오례(五禮)나 국왕의 행차, 왕실의 혼례인 가례(嘉禮) 등에서 의장용 혹은 의례용으로 사용되던 특수한 말을 가리킨다. 이는 단순히 이동을 위한 수단을 넘어 국왕의 권위와 국가의 격식을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었다. 예마는 의례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배치되는 위치와 역할이 엄격히 규정되어 있었으며,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를 받았다.
의례 시 예마는 주로 국왕의 행렬인 어가 행렬에서 국왕을 호위하거나 행렬의 위용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종묘 제례나 사직 제례와 같은 제사 의식에서는 신(神)이 타는 말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아 제단 근처에 정결하게 장식된 상태로 세워두기도 하였다. 이때 예마는 살아있는 말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 상징적인 기물로서의 역할도 겸하며 의식의 신성함과 장엄함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예마의 선발과 사육, 관리 전반은 궁중의 말과 마구간을 담당하던 관청인 사복시(司僕寺)에서 전담하였다. 예마로 선발되는 말은 체격이 당당하고 털의 색깔이 고르며, 무엇보다 성품이 온순하고 영리해야 했다. 의례 중 발생하는 수많은 군중의 소음이나 악기 연주 소리에도 놀라지 않도록 장기간에 걸친 특수 훈련을 시행하였으며, 평상시에도 다른 일반 말들과 구분하여 특별한 사료를 먹이고 엄격하게 관리하였다.
예마에 착용하는 마구(馬具) 또한 일반적인 승마용과는 차별화된 화려한 장식을 갖추었다. 금이나 은으로 장식된 안장인 가안(假鞍)을 비롯하여, 자수나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안장 가리개인 사대(沙代), 말의 갈기와 꼬리를 꾸미는 각종 장식물이 동원되었다. 이러한 마구의 형태와 색상은 사용자의 신분과 의례의 등급에 따라 법전으로 엄격히 제한되었으며, 이는 유교적 위계질서를 시각적으로 투영하는 도구이기도 하였다.
예마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나 조선왕조의 각종 『의궤(儀軌)』에서 상세히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의궤 내의 반차도(班次圖)에는 예마의 배치 순서, 말의 색상, 마구의 세부 형태 등이 정교한 그림으로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의례 문화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 근거가 된다. 예마는 한국 전통 마문화(馬文化)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산으로서, 국가 의례의 완성을 돕는 핵심적인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