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션 자이언(Partition Zion), 즉 팔레스타인 분할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영국 위임통치령 하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로 나누어 독립시키려 했던 정치적 시도와 그 과정을 의미한다. 시오니즘 운동은 19세기 후반부터 유대인의 역사적 고토인 시온(Zion)에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해당 지역에 이미 거주하던 아랍 인구와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분할은 갈등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했다. 이는 단순히 영토를 나누는 문제를 넘어 종교적, 민족적 정체성이 충돌하는 복합적인 사안이었다.
분할에 관한 구체적인 제안은 1937년 영국의 필 위원회(Peel Commission) 보고서에서 처음 공식화되었다. 당시 영국은 급증하는 유대인 이주민과 아랍 원주민 사이의 폭력 사태를 통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팔레스타인을 두 개의 별도 국가로 나누는 방안을 제시했다. 유대 측은 영토의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주권 국가 수립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를 수용하려 했으나, 아랍 측은 자신들의 영토권 침해를 이유로 전면 거부했다. 이로 인해 필 위원회의 안은 폐기되었으나, '분할'이라는 개념은 이후 논의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에 대한 국제적 동정론과 영국의 위임통치 포기로 인해 문제는 신설된 국제연합(UN)으로 넘겨졌다. 1947년 11월 29일, UN 총회는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을 국제 관리 지역으로 두는 결의안 제181호를 채택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으나 영토의 56%를 할당받았으며, 아랍 측은 인구 비율과 실질적 점유 권리를 무시한 처사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1948년 5월 14일 영국의 위임통치가 종료됨과 동시에 유대인 지도자 다비드 벤구리온은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이는 분할 계획에 따른 유대인 국가의 실질적 탄생을 의미했으나, 선포 직후 주변 아랍 국가들이 침공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결과 이스라엘은 UN 분할안보다 더 넓은 영토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아랍 국가로 예정되었던 지역의 상당 부분이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하며 '나크바(Nakba)'라고 불리는 대재앙이 시작되었다.
팔레스타인 분할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동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분할안은 유대인들에게는 국가 재건이라는 역사적 성취를 의미했으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게는 주권 상실과 강제 이주라는 비극을 초래했다. 이후 수차례의 전쟁과 평화 협정 시도에도 불구하고, 분할을 통한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은 국제사회가 지지하는 주요 대안인 동시에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난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