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Epoch) 또는 ‘세(世)’는 지질 시대의 시간 단위를 구분하는 체계 중 하나로, 기(Period)의 하위 단위이자 절(Age)의 상위 단위에 해당한다. 지구의 역사를 서술할 때 지층의 형성 과정이나 화석의 변화를 바탕으로 시간을 세분화하며, 보통 수백만 년에서 수천만 년 정도의 시간적 범위를 포함한다. 국제층서위원회(ICS)에서 정의한 표준 지질 주상도에 따르면, 누대(Eon), 대(Era), 기(Period), 세(Epoch), 절(Age) 순으로 시간 단위가 작아지며, 각 세는 특정 지층에서 발견되는 고유한 생물학적, 화학적 특징에 따라 구분된다.
지질 시대를 ‘세’로 구분하는 방식은 19세기 유럽의 지질학자들에 의해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신생대(Cenozoic)의 경우,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등의 학자들이 연체동물 화석 중 현생종이 차지하는 비율을 기준으로 에오세(Eocene), 마이오세(Miocene), 플라이오세(Pliocene) 등을 제안한 것이 현대적 명칭의 기틀이 되었다. 각 명칭의 접미사인 ‘-cene’은 그리스어로 ‘새롭다’는 의미의 ‘kainos’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해당 시기로 올수록 현생 생물과 유사한 종이 더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하나의 세가 다음 세로 넘어가는 경계는 대개 지구 규모의 급격한 환경 변화나 생물종의 대규모 멸종 및 출현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던 시기로 특징지어지며, 뒤를 잇는 홀로세(Holocene)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 인류 문명이 발달한 온난한 시기를 의미한다. 이러한 구분은 지질학적 증거인 암석층뿐만 아니라, 해양 퇴적물 내의 산소 동위원소 비중 변화나 빙핵(Ice Core) 분석을 통한 고기후 복원 데이터를 통해 정밀하게 확정된다.
현대 지질학계에서는 인류의 활동이 지구 시스템에 미친 막대한 영향력을 인정하여 새로운 세를 설정하려는 논의가 활발하다. 이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르며, 20세기 중반 이후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성 물질의 축적, 플라스틱 및 콘크리트의 전 지구적 확산, 급격한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 등을 주요 근거로 삼는다. 인류세에 대한 논의는 지표면과 생태계에 각인된 인간의 흔적이 지질학적 기록으로 남을 만큼 강력하다는 점을 시사하며, 이는 현재의 지질학적 변화가 과거 자연적인 변화 속도를 훨씬 상회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지질 시대의 ‘세’ 단위 구분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미래의 기후 변화나 생물 다양성 위기를 예측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특정 세의 지질학적 특성을 연구함으로써 과거 지구의 대기 성분이나 해수면 높이 변화를 파악할 수 있고, 이는 현재 진행 중인 환경 변화의 속도와 강도를 비교 분석하는 준거 틀을 제공한다. 따라서 에포크는 지구 역사의 연속성 안에서 특정한 환경적 국면을 정의하는 핵심적인 시간적 이정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