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은 20세기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해이자,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씻을 수 없는 충격과 변화를 동시에 가져온 결정적인 시기이다. 1997년 1월 1일 수요일로 시작하여 12월 31일 수요일로 끝난 평년이며, 단기 4330년이다. 국제적으로는 홍콩 반환과 같은 역사적 전환점이 있었으나, 대한민국 내부적으로는 소위 'IMF 사태'로 불리는 외환 위기와 헌정 사상 최초의 여야 정권 교체라는 거대한 두 사건이 맞물려 사회 전반의 구조가 뿌리째 흔들린 해로 기록된다.
경제 분야에서는 건국 이래 최악의 시련이 닥쳤다. 연초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삼미, 진로, 대농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했고, 7월에는 재계 순위 8위였던 기아그룹마저 부도 유예 협약 대상이 되며 경제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외환 위기의 여파와 국내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 단기 외채 관리 실패 등이 겹치면서 외환 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정부는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했고, 12월 3일 협상이 타결되며 한국 경제는 IMF 관리 체제하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고금리, 기업 구조조정, 대량 해고가 발생하여 수많은 실직자가 양산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제15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어 한국 정치 지형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12월 18일 치러진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와 국민신당의 이인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50년 만에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사건이었다. 김영삼 정부 말기의 경제 파탄에 대한 심판론, 병역 비리 의혹, 그리고 보수 진영의 분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김대중 정부의 출범을 가능케 했다.
국제 사회에서도 굵직한 사건들이 이어졌다. 7월 1일, 영국이 156년의 식민 통치를 끝내고 홍콩을 중국에 반환함으로써 '일국양제' 시대가 개막되었고, 이는 대영제국의 실질적인 해체를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다. 8월 31일에는 영국의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전 세계적인 추모 물결이 일었다.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미국의 화성 탐사선 패스파인더가 화성 착륙에 성공하여 생생한 화성 표면 사진을 전송했고, 영국에서는 복제 양 돌리의 존재가 대중에게 공개되어 생명 윤리 논쟁을 촉발했다.
사회 및 문화적으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교차하는 과도기적 특성을 보였다. 대중문화에서는 H.O.T., 젝스키스, S.E.S. 등 1세대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여 거대 팬덤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영화계에서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이 개봉하여 전 세계적인 흥행 신드롬을 일으켰다. 통신 분야에서는 무선 호출기(삐삐)의 사용이 정점에 달했으나, 시티폰의 실패와 개인휴대통신(PCS) 서비스의 개시로 휴대전화 대중화의 초기 단계로 진입하는 시점이었다. 또한, PC 통신이 전성기를 누리는 가운데 초고속 인터넷망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