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9년

959년은 10세기 중반의 해로,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중요한 정치적 변동이 일어난 시기였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오대십국 시대의 혼란이 마무리되어 가는 과정에서 후주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으며, 고려에서는 광종의 왕권 강화 정책이 본궤도에 올랐다. 유럽과 비잔티움 제국에서도 최고 통치자의 사망과 계승이 잇따르며 정세의 변화가 나타난 해이기도 하다.

중국 대륙에서는 오대십국 시대의 가장 강력한 군주 중 한 명이었던 후주의 세종 시영이 서거했다. 시영은 북한을 공격하고 연운십육주 수복을 시도하는 등 통일 대업을 목전에 두었으나, 원정 도중 병을 얻어 39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뒤를 이어 7세의 어린 아들 시종훈(공제)이 즉위하였으나, 이는 군부의 실권자였던 조광윤이 이듬해 진교의 변을 일으켜 송나라를 건국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고려에서는 광종 재위 10년째를 맞는 해였다. 전년도인 958년에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 제도를 처음으로 시행한 고려는 959년에 이르러 관료 체제의 정비와 왕권 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또한 후주와의 외교 관계를 지속하며 중원 정세의 변화를 예의주시했으며, 내부적으로는 호족 세력을 억제하고 중앙 집권적 국가 기틀을 다지는 작업이 이어졌다. 이 시기의 개혁은 고려 왕조의 기틀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학문과 예술을 장려하며 '적자출생왕'이라 불린 황제 콘스탄티누스 7세가 서거하고, 그의 아들 로마노스 2세가 황제 자리를 승계했다. 콘스탄티누스 7세의 통치기는 비잔티움 르네상스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그의 사망은 제국의 문화적·정치적 흐름에 변화를 가져왔다. 로마노스 2세는 즉위 후 군사적인 확장을 꾀하며 제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잉글랜드 왕국에서는 국왕 에드위그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인 에드거가 왕위에 올랐다. 에드거의 즉위는 분열되었던 잉글랜드를 안정시키고 문화적 발전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평화왕'이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안정적인 통치를 이어갔으며, 그의 치세 동안 잉글랜드는 수도원 개혁과 행정 정비를 통해 중세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959년은 세계 각지에서 강력한 지도자들이 물러나고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 해당하는 해였다. 동아시아에서는 후주의 몰락과 송의 건립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으며, 고려와 서구권 국가들은 독자적인 통치 체제를 확립하거나 재편하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러한 변화들은 10세기 후반의 국제 질서를 재편하는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