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5

서기 935년은 한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 해 중 하나로, 천년 왕국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 사실상 굳어진 시기이다. 한반도 내부에서는 신라의 자진 항복과 후백제의 내부 정변이라는 두 가지 굵직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여 동아시아 정세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두 사건으로 인해 삼국의 힘의 균형은 완전히 무너졌으며, 고려의 태조 왕건은 한반도의 유일한 패권자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935년 11월, 신라의 제56대이자 마지막 국왕인 경순왕은 국가의 존립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고려에 항복을 결정했다. 당시 신라는 영토가 경주 일대로 축소되고 국력이 쇠퇴하여 각지의 반란과 후백제의 지속적인 군사적 위협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마의태자를 비롯한 일부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와 통곡에도 불구하고, 경순왕은 백성들의 참혹한 희생을 막고자 백관을 거느리고 개경으로 나아가 왕건에게 귀부했다. 이로써 기원전 57년에 건국된 신라는 992년의 긴 역사를 끝내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같은 해 후백제에서는 국가의 뿌리를 흔드는 심각한 내분이 발생했다. 후백제의 시조 견훤이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장남 신검이 935년 3월 정변을 일으켰다. 신검은 동생 금강을 살해하고 아버지 견훤을 김제 금산사에 유폐한 뒤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석 달 뒤인 6월, 견훤은 감시를 뚫고 탈출하여 오랜 숙적이던 고려의 왕건에게 망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왕건은 견훤을 상부(尙父)로 예우하며 극진히 환대했고, 이는 후백제군의 사기를 크게 꺾는 동시에 고려의 정통성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935년의 세계사에서도 여러 중요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 중기, 다이라노 마사카도가 간토 지방에서 무력 반란을 일으키며 이른바 '죠헤이·텐교의 난'이 시작되었다. 유럽에서는 보헤미아 공국의 군주이자 훗날 체코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바츨라프 1세가 동생 볼레스라프 1세의 음모에 의해 암살당했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무함마드 이븐 툭즈 알이크시드가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로부터 통치권을 인정받아 이집트 일대에 이크시드 왕조를 개창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결론적으로 935년은 한반도의 정치적 주도권이 고려로 완전히 넘어간 역사적 분수령이다. 신라의 평화적인 병합과 후백제 창업 군주의 고려 망명은 고려가 군사적 소모를 최소화하면서도 삼한 통일의 대의명분을 완벽하게 획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935년에 형성된 이러한 압도적인 정치적,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고려는 이듬해인 936년 일리천 전투에서 내분으로 약화된 후백제를 물리치고 마침내 진정한 의미의 민족 재통일을 완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