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년은 10세기 초반의 역사적 전환점을 이루는 해로, 동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기존의 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세력이 부상한 격변의 시기였다. 특히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를 지배하던 발해의 멸망은 동북아시아의 세력 판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해는 고대 국가들의 쇠퇴와 중세적 질서의 재편이 가속화된 시점으로 평가받는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926년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거란에 의한 발해의 멸망이다. 요나라의 태조 야율아보기는 925년 말부터 시작된 대규모 원정을 통해 발해의 요충지인 부여성을 함락시킨 후, 빠른 속도로 수도인 상경용천부를 압박했다. 발해의 마지막 왕 대인선은 거란군에 항복하며 건국 228년 만에 국맥이 끊기게 되었다. 요나라는 발해의 옛 땅에 동란국을 세워 직접 지배를 시도했으나, 발해 유민들의 거센 저항과 부흥 운동은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발해의 멸망은 인접한 고려의 정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려 태조 왕건은 고구려 계승 의식을 공유하던 발해를 동족의 나라로 여겼으며, 발해 멸망 전후로 유입된 대광현을 비롯한 수만 명의 유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는 고려의 인적 자원을 확충하고 북진 정책의 명분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발해를 무너뜨린 거란에 대해서는 '짐승과 같은 나라'라 칭하며 강경한 적대 정책을 유지하게 되었는데, 이는 훗날 여요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중국 대륙에서는 오대십국 시대의 혼란이 정점에 달해 있었다. 926년, 후당의 장종 이존욱이 부하들의 반란인 '흥교문의 변'으로 인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후당의 초기 전성기를 이끌던 지도 체제가 붕괴되었으며, 뒤를 이어 명종 이사원이 즉위하게 되었다. 명종의 즉위로 후당은 일시적인 안정을 찾는 듯했으나, 중앙 정부의 통제력 약화와 지방 절도사들의 세력 비대는 중국 대륙의 분열상을 더욱 심화시켰다.
유럽 지역 또한 926년에 중요한 정치적 변화를 겪고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카롤링거 왕조의 쇠퇴 이후 지역 영주들의 할거가 계속되었으며, 잉글랜드에서는 애설스탠 왕이 브리튼 섬의 주도권을 장악하며 통일 잉글랜드 왕국의 기틀을 다지고 있었다. 동유럽과 중앙유럽에서는 마자르족의 습격이 지속되어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었고, 비잔티움 제국은 불가리아 제국과의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발칸 반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처럼 926년은 전 세계적으로 고대 제국들의 잔재가 사라지고 새로운 민족 국가와 왕조들이 기틀을 잡기 시작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