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2

서기 922년은 10세기 전반에 속하는 평년으로, 율리우스력에서는 화요일에 시작한다. 동양에서는 당나라 멸망 이후 오대십국 시대의 혼란이 지속되던 시기였으며, 한반도에서는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한 고려 태조 왕건의 치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서구권에서는 중세 초기에서 성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이며, 이슬람 문명권은 아바스 왕조의 영향력 하에서 활발한 외교와 탐험이 이루어지던 때이다.

한반도에서는 고려 태조 5년에 해당한다. 이 해 고려는 북방 민족인 거란(요나라)과 초기 외교 관계를 맺었다. 태조 왕건은 거란의 사신이 가져온 낙타와 말을 받아들였으며, 이는 당시 고려가 북방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실리적인 외교를 전개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고려는 내부적으로 호족 세력을 포섭하고 체제를 정비하며 후백제 및 신라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중국 대륙은 오대십국 시대의 격변기였다. 후량(後梁)이 쇠퇴하고 이존욱이 이끄는 후당(後唐) 세력이 급격히 성장하던 시기이다. 후당 세력은 후량을 압박하며 중원 장악을 목전에 두고 있었으며, 이러한 혼란상은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을 미쳐 각 세력이 중국의 여러 왕조와 개별적인 외교 관계를 맺으며 정통성을 확보하려 노력하는 배경이 되었다. 또한 북방에서는 야율아보기가 이끄는 거란이 세력을 확장하며 동아시아 전체의 세력 판도를 재편하고 있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무크타디르가 파견한 사절단이 볼가 불구르(Volga Bulgars)에 도착한 해로 기록되어 있다. 사절단의 일원이었던 이븐 파들란(Ibn Fadlan)은 이 여정을 상세한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는 당시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 거주하던 튀르크계 부족들과 루스인(Rus')들의 생활상, 풍습, 종교를 묘사한 귀중한 역사적 사료로 평가받는다. 특히 북유럽 바이킹과 슬라브족의 문화를 아랍인의 시각에서 기록한 이 문헌은 중세 초 북부 유라시아 연구의 핵심적 자료가 된다.

유럽에서는 비잔티움 제국과 불가리아 제국 사이의 갈등이 정점에 달해 있었다. 불가리아의 시메온 1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위협하며 발칸 반도의 패권을 다투었으며, 비잔티움 황제 로마노스 1세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외교적, 군사적 노력을 기울였다. 서유럽 지역에서는 카롤링거 왕조의 분열 이후 각지의 영주들이 세력을 키우며 봉건제가 공고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마자르족의 침공이 지속되면서 중부 유럽 전역이 불안정한 정세에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