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공식(九二共識)은 1992년 중국과 대만(양안)이 홍콩에서 열린 실무 회담과 이후의 서신 교환을 통해 도출한 구두 합의 내지 정치적 원칙을 일컫는 용어다. 핵심 내용은 '해협 양안이 모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하나의 중국'이 구체적으로 어느 국가를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양측의 해석이 달랐으며, 이를 바탕으로 양안 관계의 실무적 교류를 추진하기 위해 모호성을 유지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평가받는다.
1980년대 후반부터 대만과 중국 간의 이산가족 상봉 등 민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우편, 항공, 무역 등 실무적인 문제를 해결할 공식적인 대화 창구가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대만은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를, 중국은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를 설립하여 반관반민 형태의 접촉을 시작했다. 1992년 10월, 두 기구의 대표들은 홍콩에서 만남을 가졌고, 비록 공식적인 공동 성명이나 문서를 채택하지는 못했으나 이후 통신문을 주고받으며 양안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되 정치적 의미는 논외로 하고 실무 협상에 집중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합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대만 측이 주장하는 '일중각표(一中各表)'라는 개념으로 요약된다. 이는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그 명칭과 의미에 대해서는 각자의 해석에 맡긴다는 뜻이다. 대만(국민당)은 '하나의 중국'이 곧 중화민국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반면, 중국(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일한 합법 정부이며 대만은 그 일부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양측은 이러한 핵심적인 해석의 차이를 묵인한 채 경제적, 사회적 교류를 확대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이후 양안 관계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사실 '92공식'이라는 명칭 자체는 1992년 당시 회담에서 직접 사용된 적이 없다. 이 용어는 2000년 대만의 첫 정권 교체를 앞두고 국민당 소속의 쑤치(蘇起) 당시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이 '하나의 중국, 각자의 해석'이라는 복잡한 상황을 간결하게 포장하기 위해 처음 고안한 것이다. 대만 내 정치 진영에 따라 이 공식에 대한 입장은 극명하게 갈린다. 친중 성향의 국민당은 양안 평화와 교류를 위한 핵심 기초로 이를 지지하지만, 대만 독립 성향의 민주진보당(민진당)은 당시 명문화된 합의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중국의 일방적 통일 논리에 불과하다며 배척한다.
최근 들어 92공식을 둘러싼 양안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는 추세다.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는 92공식의 핵심을 '하나의 중국'에만 국한하여 강조하고, 나아가 이를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 대만 통일 방안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이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반발하여 대만 내에서는 민진당 정권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92공식에 대한 회의론이 커졌다. 결과적으로 92공식은 과거 적대적이었던 양안 교류의 물꼬를 튼 역사적 타협안이었으나, 현재는 양안 관계의 경색과 대만 내부의 이념적 대립을 상징하는 가장 논쟁적인 정치 용어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