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85년은 1세기의 85번째 해이며, 율리우스력으로는 토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시기는 로마 제국이 전성기로 향하는 과정에 있었으며, 동아시아에서는 후한과 한반도의 초기 국가들이 영토와 체제를 정비하던 시기였다. 세계 각지에서 고대 국가들의 기틀이 다져지며 정치적, 군사적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한 해이기도 하다.
로마 제국에서는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는 이해에 자신을 '영구 감찰관(Censor Perpetuus)'으로 임명하여 로마의 도덕적 기강을 확립하고 원로원을 강력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한편, 다뉴브 강 북쪽의 다키아 왕국은 데케발루스의 지휘 아래 로마의 속주인 모에시아를 침공했다. 이 사건은 로마와 다키아 사이의 장기적인 전쟁인 '로마-다키아 전쟁'의 서막이 되었으며, 로마 제국의 국방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반도에서는 신라와 백제 사이의 초기 영토 분쟁이 구체화되었다. 신라의 파사 이사금 6년인 이해, 백제가 신라의 서쪽 변경에 위치한 거양성(巨樣城)을 침공했다. 이에 파사 이사금은 군대를 보내 백제의 공격을 방어하고 격퇴했다. 이는 초기 삼국 시대 국가들이 중앙 집권화를 꾀하며 주변국과의 국경 확정을 위해 무력 충돌을 마다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다.
중국 후한에서는 장제(章帝)가 재위 중이었다. 후한은 이 시기에 비교적 안정된 국력을 바탕으로 유교적 통치 질서를 확립해 나갔다. 전해인 79년에 열린 백호관 회의의 결과물이 정리되며 유교 경전에 대한 해석이 국가 표준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서역과의 교류가 지속되면서 비단길을 통한 물적, 인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동서양 문화의 연결 고리가 유지되었다.
이처럼 85년은 유라시아 대륙의 양 끝에서 강력한 제국들이 내부 내실을 다지는 한편, 주변 세력과의 충돌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던 시기다. 로마의 전제 군주제 강화와 다키아와의 갈등, 한반도 초기 국가들 간의 세력 다툼, 그리고 후한의 문화적 정비는 모두 고대 세계의 지형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