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4년은 통일신라 헌덕왕 16년에 해당하는 해로, 신라의 국방 체계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다. 헌덕왕은 김헌창의 난 등 내부적인 진골 귀족들의 반란을 수습한 후,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북방 경계를 강화했다. 이해 7월, 왕은 우잠태수(牛岑太守) 백영(白永)에게 명하여 한산(漢山) 북쪽 주·군(州·郡)의 사람 1만 명을 동원해 패강(浿江, 지금의 대동강)에 300리에 이르는 장성을 쌓게 했다. 이는 발해의 남하를 저지하고 북방 국경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에서 시행된 대규모 토목 공사였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제12대 황제 목종(穆宗)이 1월에 붕어하고, 그의 아들인 경종(敬宗)이 15세의 어린 나이로 제13대 황제에 즉위했다. 목종의 치세는 환관들의 권력 비대화와 중앙 통제력의 약화로 점철되었으며, 뒤를 이은 경종 역시 환관들에 의해 옹립되어 정국이 매우 불안정했다. 이러한 중앙 정부의 혼란은 번진(藩鎭)의 할거를 부추겨 당제국이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배경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종교와 정치적 측면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교황 파스칼 1세가 선종한 후 에우제니오 2세가 제99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프랑크 왕국의 경건왕 루도비쿠스 1세의 아들이자 공동 황제였던 로타르 1세는 '로마 헌장(Constitutio Romana)'을 공포했다. 이 헌장은 교황을 선출할 때 황제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교황의 통치권을 황제 아래에 두는 내용을 담고 있어, 중세 초기 세속 권력이 종교 권력에 대해 우위를 점하려 했던 흐름을 보여준다.
일본은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중기로, 준나 천황(淳和天皇)의 통치 아래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시기 일본은 견당사(遣唐使)를 파견하여 당나라의 선진 문물과 불교 경전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본 고유의 문화적 기틀을 마련해 나갔다. 또한 아바스 왕조의 이슬람 제국에서는 알 마문 칼리프의 치하에서 학문적 황금기가 지속되었으며, 그리스 철학과 과학 저적들이 아랍어로 번역되는 지혜의 집(Bayt al-Hikma)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