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8년

778년은 신라 혜공왕 14년에 해당하는 해로, 신라 하대의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였다. 무열왕계의 마지막 왕이었던 혜공왕은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귀족 세력의 전횡과 잦은 반란에 시달렸다. 768년 '96각간의 난' 이후 지속된 정치적 불안정은 이 시기에도 이어졌으며, 김양상(훗날 선덕왕)과 김경신(훗날 원성왕) 등 실권자들의 영향력이 비대해지면서 왕권은 급격히 형해화되고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가 이베리아반도 원정을 단행한 역사적인 해이다. 카를 대제는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피레네산맥을 넘어 사라고사를 포위했으나, 공략에 실패하고 퇴각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크 군대는 피레네산맥의 론스보 고개를 통과하던 중 지역 부족인 바스크인들의 기습을 받아 후방 부대가 전멸하는 참사를 겪었다.

론스보 전투에서 전사한 인물 중에는 브르타뉴 변경백이었던 롤랑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건은 훗날 중세 유럽의 대표적인 무훈시인 '롤랑의 노래'의 모태가 되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기독교 세력인 바스크인과의 전투였으나, 문학적으로는 이슬람 군대와의 장렬한 성전으로 각색되어 중세 기사도 정신을 상징하는 전설적인 서사로 발전하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당나라는 대종 재위기로, 안사의 난 이후 무너진 제국의 질서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중앙 정부의 통제력은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되었으며, 지방 절도사들이 독자적인 군사력과 조세권을 행사하는 번진 할거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는 당나라가 점진적인 쇠락의 길로 접어드는 구조적 배경이 되었으며, 주변국인 신라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나라 시대 후반인 고닌 천황의 치세 아래 있었다. 이 시기 일본은 당나라와 신라로부터 불교 문물과 통치 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율령 체제의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수도인 헤이조쿄를 중심으로 불교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짐에 따라, 이후 수도를 이전하려는 움직임의 원인이 되는 갈등이 축적되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