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8년

768년(신라 혜공왕 4년) 한반도의 신라는 심각한 정치적 격변기에 처해 있었다. 대아찬 김대공과 그의 동생인 김대렴이 반란을 일으켜 중앙 정부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이 반란은 단순한 지방 세력의 소요를 넘어 신라 전역의 96 각간이 서로 군사를 일으켜 싸우는 대규모 내전인 '96각간의 난'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무열왕계 직계 왕통의 권위가 실추되고 진골 귀족들 간의 왕위 쟁탈전이 본격화되었음을 의미하며, 신라 중대가 저물고 하대의 혼란상으로 진입하는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다.

서유럽에서는 프랑크 왕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768년 9월, 카롤루스 왕조를 개창하고 교황청과의 유대를 강화했던 단신왕 피핀이 사망했다. 그의 사후 프랑크 왕국의 관습에 따라 영토는 두 아들인 카롤루스 1세(샤를마뉴)와 카를로만 1세에게 분할 승계되었다. 특히 이때 즉위한 카롤루스 1세는 훗날 서유럽의 정치적·문화적 통합을 이루고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추대되는 등 유럽 역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

동아시아의 당나라는 대종의 통치 아래 안사의 난 이후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력을 회복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앙 정부의 통제력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약화되었으며, 지방 절도사들이 독자적인 군사력과 행정권을 행사하는 번진 할거의 조짐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국경 지대에서는 토번의 세력이 강성해져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위협하는 등 대외적인 군사적 긴장감이 지속되던 시기였다.

중동 지역의 이슬람 세계에서는 아바스 왕조의 제2대 칼리파 알 만수르가 제국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고 있었다. 그는 762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새로운 수도 바그다드를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로 육성하는 데 매진했다. 768년 무렵 바그다드는 세계적인 대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으며, 동서 교역의 핵심 거점이자 학문과 예술이 꽃피는 이슬람 황금시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일본의 나라 시대에는 쇼토쿠 천황이 재위하며 불교 중심의 통치 체제를 강화하고 있었다. 이 시기 일본 조정은 승려 도쿄(道鏡)가 정계의 실권을 장악하며 종교와 정치가 밀착된 독특한 권력 구조를 보였다. 768년에는 후지와라 가문의 수호신을 모시는 가스카 대사가 창건되는 등 귀족 문화와 불교 예술이 융합된 덴표 문화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일본 고대 국가의 기틀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