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9년

719년은 8세기 초엽에 해당하는 해로, 동아시아에서는 통일신라와 당나라, 발해 등 여러 국가가 기틀을 다지며 전성기를 향해 나아가던 시기였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신라 성덕왕 18년에 해당하며, 당나라에서는 현종의 치세인 개원 7년, 일본에서는 겐쇼 천황이 재위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각국의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가 공고해지고 불교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 교류와 예술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통일신라에서는 이 해에 문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신라의 고위 관직인 중찬을 지냈던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과 국왕의 안녕을 빌기 위해 경주 감산사를 창건하고 석조 미륵보살입상과 아미타여래입상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 불상들은 당시 신라 불교 조각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받으며, 오늘날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불상 뒷면에 새겨진 명문은 당시 신라 귀족의 신앙관과 당나라와의 교류 양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가 된다.

북쪽의 발해에서는 시조 대조영이 서거하고 그의 아들 대무예가 무왕으로 즉위하며 제2대 왕의 시대를 열었다. 대조영의 죽음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통합해 세워진 발해가 초기 국가 형성기를 지나 본격적인 영토 확장과 체제 정비 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했다. 무왕은 즉위 직후 '인안'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당나라와 대등한 지위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며 발해의 자주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현종의 치세 하에 '개원의 치'라고 불리는 태평성대가 이어지고 있었다. 현종은 행정과 세제 개혁을 통해 국력을 신장시켰으며, 이를 바탕으로 당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다. 719년 당시 당나라는 주변국인 신라, 일본 등과 활발히 교류하며 불교와 유학, 예술 양식을 전파하고 있었고, 이는 동아시아 공동체 문화권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

이 시기 세계적으로는 서아시아와 유럽의 정세도 역동적이었다. 이슬람 제국인 우마이야 왕조는 칼리프 우마르 2세의 통치 아래 제국의 내실을 다지고 이슬람교로의 개종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한편 비잔티움 제국은 레오 3세의 지휘 아래 이슬람 세력의 공세를 막아내며 제국의 멸망 위기를 극복하고 내부 안정을 도모하던 시기였다. 719년은 이처럼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들이 각자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던 시점으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