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9년은 7세기의 마지막 해에 해당하며, 육십갑자로는 기해년(己亥年)이다. 이 해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각국의 정치적 변동과 체제 정비가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신라의 효소왕 8년, 북쪽에서는 대조영이 건국한 진(震, 훗날의 발해)의 고왕 2년에 해당한다. 중국은 측천무후가 통치하던 무주(武周)의 성력(聖曆) 2년이었으며, 일본은 몬무 천황 3년이었다.
신라에서는 효소왕이 재위 중이었으며, 내부적인 안정을 꾀하던 시기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록에 따르면, 699년 2월에 왕이 지방을 순행하며 백성들을 위로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해 겨울 10월에는 김유신의 아내이자 태종 무열왕의 셋째 딸인 지소부인(智炤夫人)이 사망했다. 지소부인의 죽음은 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을 이끌었던 구세대의 퇴장과 왕실 및 귀족 사회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만주 지역에서는 대조영이 이끄는 신생 국가인 진국(발해)이 건국 직후의 기틀을 다지고 있었다. 698년에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우고 진국왕(震國王)을 자칭한 대조영은 699년경 당나라의 토벌군을 막아내고 거란 및 돌궐과의 관계를 조율하며 독자적인 세력권 확립에 주력했다. 당시 당나라는 북방 이민족들의 반란으로 인해 요동 지역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어 있었고, 대조영은 이러한 국제 정세를 활용하여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규합하며 국가의 내실을 다졌다.
중국 대륙은 측천무후가 다스리는 무주(당나라) 시대로, 대외적으로는 돌궐(후돌궐)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돌궐의 묵철 가한(카파간 카간)은 당나라 북방 변경을 지속적으로 침략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측천무후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를 파견하고 방어책을 강구했으나, 돌궐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699년은 당나라가 북방 민족들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가고, 반면 주변 국가들은 당의 지배력에서 벗어나 자립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 해였다.
일본은 아스카 시대로 몬무 천황이 통치하고 있었다. 『속일본기』에 따르면 699년 5월, 일본의 전설적인 수행자이자 수험도(슈겐도)의 개조로 알려진 엔 노 오즈누(役小角)가 사람들을 현혹했다는 죄목으로 이즈섬에 유배되었다. 이는 당시 일본 조정이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민간의 독자적인 종교 세력이나 신앙 집단을 통제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또한 일본은 이 시기에 율령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법령 정비와 관료제 확립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