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7년은 6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연도이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이 해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중국 화북 지역의 통일이다. 당시 중국은 남북조 시대로 여러 국가가 대립하고 있었으나, 577년 북주의 무제가 오랜 경쟁 국가였던 북제의 수도 업을 함락시키고 멸망시켰다. 이로써 북주는 화북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게 되었으며, 이는 훗날 수나라가 중국 대륙 전체를 통일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정학적, 군사적 기반이 되었다.
한반도의 삼국시대에 있어서 577년은 백제 불교사 및 고고학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해이다. 백제의 제27대 국왕인 위덕왕은 577년인 정유년 2월 15일에 죽은 왕자를 기리기 위해 사비(현재의 부여)에 왕흥사를 창건하였다. 이는 2007년 부여 왕흥사지 발굴 조사 중 출토된 청동 사리함 표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 명확히 입증되었다. 이 명문은 문헌 기록을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하며, 백제의 뛰어난 금속 공예 기술과 왕실의 불교 신앙을 보여주는 핵심 유물로 평가받는다.
동시에 한반도 내에서는 국가 간의 군사적, 외교적 움직임이 활발했다. 당시 신라는 진지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백제는 577년 신라의 서쪽 변경 지역을 선제공격하며 영토 확장을 도모했으나 이찬 세종이 이끄는 신라군에게 일선군 북쪽에서 크게 패배하여 격퇴당했다. 한편, 백제는 일본과의 교류도 적극적으로 이어갔다. 위덕왕은 577년에 일본에 불교 경전을 비롯하여 율사, 선사, 비구니, 주금사, 불상 제작자인 조불공, 사찰 건축가인 조궁공 등 대규모의 불교 사절단과 기술자들을 파견하여 일본 아스카 문화와 초기 불교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럽 역사에서도 577년은 중요한 변화의 기점이 되는 해였다. 브리튼섬(현재의 영국)에서는 앵글로색슨족의 잉글랜드 정복 과정 중 주요 전투인 데오람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체울린이 이끄는 웨식스 군대는 원주민인 브리튼인들을 크게 물리치고 글로스터, 사이런세스터, 바스 등 서부의 주요 도시들을 점령했다. 이 승리로 인해 앵글로색슨족은 브리스톨 해협에 도달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웨일스 지역의 브리튼인들과 콘월 지역의 브리튼인들이 지리적으로 영구히 분리되는 결과를 낳았다.
결론적으로 577년은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기존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과도기적 시기였다. 중국에서는 북조의 통합이 이루어지며 오랜 분열의 종식을 향해 나아갔고, 한반도에서는 백제의 왕흥사 창건과 대일 불교 전파를 통해 고대 불교문화가 만개함과 동시에 신라와의 영토 분쟁이 지속되었다. 서양에서는 앵글로색슨족의 브리튼섬 장악이 가속화되는 등, 각 지역의 정치적, 문화적 지형을 뒤바꾸는 굵직한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된 역사적인 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