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년은 6세기의 30번째 해이며, 율리우스력으로 금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다. 동양의 육십갑자로는 경술년(庚戌年)에 해당하며, 단기 2863년이다. 이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고대 제국들의 체제 정비와 군사적 충돌이 동시에 발생하던 과도기였다.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의 삼국시대와 중국의 남북조 시대가 전개되고 있었고, 서양 및 중동 지역에서는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 간의 패권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한반도 정세를 살펴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기 다른 통치 체제 하에서 국력을 다지던 시기였다. 고구려는 제22대 안장왕이 통치하던 시기로, 북위 및 양나라와 등거리 외교를 펼치며 안정을 도모했다. 백제는 제26대 성왕이 재위 중이었으며, 웅진(공주)에 도읍을 두고 있었으나 왕권 강화와 국력 신장을 위해 내부 체제를 정비하고 있었다. 신라는 제23대 법흥왕의 재위기로, 527년 불교를 공인한 직후였기에 불교를 통한 사상적 통합과 율령 정비 등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로서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는 과정에 있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북조인 북위(北魏)의 정치적 혼란이 극에 달했다. 530년은 북위의 황제 효장제가 권력을 전횡하던 권신 이주영(爾朱榮)을 황궁으로 유인해 살해한 해이다. 당대 최고의 실권자였던 이주영의 죽음은 북위 정계에 거대한 후폭풍을 몰고 왔으며, 이주씨 일족의 반란과 내전을 촉발하여 결국 북위가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고 멸망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반면 남조의 양나라(梁)는 무제의 통치 하에 불교 문화가 꽃피우며 비교적 안정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서양과 중동 지역에서는 동로마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간의 '이베리아 전쟁'이 지속되고 있었다. 특히 530년 6월, 메소포타미아 북부 국경 도시 다라(Dara)에서 벌어진 '다라 전투'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동로마 제국의 명장 벨리사리우스는 수적으로 훨씬 우세했던 페르시아 군대를 상대로 뛰어난 방어 전술을 구사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 치세 초기 동로마 제국의 군사적 능력을 입증한 사건이었으며, 벨리사리우스가 역사적 명장으로 부상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종교사적으로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 계승과 관련된 사건이 있었다. 제54대 교황 펠릭스 4세가 530년에 사망한 뒤, 보니파시오 2세가 제55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일부 성직자들이 디오스코로스를 대립교황으로 선출하면서 교회가 분열될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디오스코로스가 선출된 지 한 달여 만에 급사함으로써 교회 대분열 사태는 자연스럽게 해소되었고 보니파시오 2세의 권위가 확립되었다. 한편 동로마 제국에서는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편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으며, 이는 후대 법률 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지적 활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