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3년은 신라 경문왕 3년, 당나라 의종 함통 4년, 일본 세이와 천황 조간 5년에 해당하는 해이다. 이 시기 동아시아와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는 왕권의 강화와 쇠퇴, 종교적 확산, 그리고 대규모 전염병과 같은 사회적 변동이 일어났다. 한반도의 신라는 고대 국가로서의 마지막 안정기를 유지하며 내부적인 체제 정비를 이어가던 시점이었다.
신라에서는 경문왕이 즉위한 지 3년째 되는 해로, 왕실의 권위를 세우고 지방 세력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 경문왕은 즉위 초반 발생했던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불교를 진흥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863년경 신라는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지속하며 선진 문물을 수용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골품제의 모순이 심화되는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남방 국경 지대에서 중대한 군사적 사건이 발생했다. 863년 1월, 남조(南詔)의 군대가 당나라의 영토였던 교주(현재의 베트남 하노이 인근)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나라는 남방 통치권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이는 당나라 후기 지방 통제력 약화와 국력 쇠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당시 당나라는 중앙 정부의 부패와 환관의 득세로 인해 점차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가 지속되는 가운데 사회적인 재난이 닥쳤다. 863년 일본 전역에는 두창(천연두)이나 인플루엔자로 추정되는 대규모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교토의 신센엔(神泉苑)에서는 역병을 일으킨다고 믿었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기온고료에(祗園御霊会)’라는 제례가 처음으로 거행되었다. 이 의식은 오늘날 일본의 대표적인 축제인 기온 마츠리의 기원이 된 중요한 종교적·문화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유럽과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종교와 전쟁 면에서 역사적인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은 라라카온 전투에서 이슬람 세력인 멜리테네의 아미르 군대를 격파하며 아나톨리아 동부의 안전을 확보했다. 또한,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형제가 대모라비아 왕국의 요청으로 선교 활동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이들은 슬라브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슬라브어 전용 문자를 고안하였는데, 이는 훗날 키릴 문자의 토대가 되어 동유럽 문화권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