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년

518년은 서력 기원의 518번째 해이며, 6세기의 18번째 해이다. 간지로는 무술년(戊戌年)에 해당하며, 개띠 해이다. 한반도의 역사 구분으로는 삼국 시대로 분류되며, 고구려는 문자명왕 27년, 백제는 무령왕 18년, 신라는 법흥왕 5년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중국은 남북조 시대로, 북조는 북위 효명제 3년(신귀 원년), 남조는 양나라 무제 천감 17년에 해당한다.

한반도 정세를 살펴보면, 고구려는 문자명왕의 통치 말기로 접어들어 비교적 안정적인 국면을 유지하고 있었다. 문자명왕은 장수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의 최대 영토를 유지하며 북위 및 남제, 양나라와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 백제는 무령왕의 치세 하에 고구려에 의해 잃었던 국력을 회복하고 중국 양나라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문화를 발전시키던 중흥기였다. 신라는 법흥왕이 즉위한 지 5년째 되던 해로, 1년 전인 517년에 병부(兵部)를 설치하는 등 중앙 집권적 국가 체제 정비와 왕권 강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중국 역사, 특히 종교사적으로 518년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해이다. 북위의 호 태후(胡太后)의 명을 받아 승려 송운(宋雲)과 혜생(惠生)이 불경을 구하기 위해 서역(인도)으로 구법 여행을 떠났다. 이들은 518년에 낙양을 출발하여 파미르 고원을 넘고 간다라 지방 등지를 순례한 뒤 170여 권의 대승 불경을 수집하여 귀국하였다. 송운과 혜생의 여행기인 《송운행기(宋雲行記)》는 6세기 초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지리, 풍속, 불교 현황을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서양사, 특히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의 역사에서는 중대한 권력 교체가 발생한 해이다. 518년 7월,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였다. 이에 따라 황실 근위대장이었던 유스티누스 1세(Justinus I)가 제위 계승 다툼 끝에 황제로 즉위하였다. 유스티누스 1세는 문맹이었고 고령이었으나, 그의 조카이자 양자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보좌를 받아 제국을 통치했다. 이는 훗날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고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유스티니아누스 왕조가 시작되는 기점이 되었다.

이 외에도 518년은 동아시아와 유럽 각지에서 자연재해와 관련된 기록이 일부 존재한다. 중국의 사서에는 지진이나 가뭄과 같은 재해 기록이 산발적으로 나타나며, 이는 당시 농경 사회의 경제와 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했다. 결론적으로 518년은 동아시아에서는 불교 문화의 심화와 삼국의 체제 정비가 이루어졌고, 유럽에서는 비잔티움 제국의 새로운 중흥을 예고하는 왕조의 교체가 일어난 역사적 전환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