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은 자연수 체계에서 476 다음, 478 직전의 수다. 역사적으로는 서기 477년을 의미하며, 이 시기는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기존 질서가 재편되는 혼란기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삼국 시대의 영토 확장과 왕권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서구에서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직후의 권력 공백 속에서 새로운 세력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삼국 시대 중 백제에게 477년은 정치적 격변이 일어난 해였다.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된 후 웅진으로 천도했던 문주왕이 병관좌평 해구에 의해 암살당했다. 문주왕의 뒤를 이어 그의 장남인 삼근왕이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으나, 실권은 왕을 살해한 해구 일파가 장악하게 되었다. 이는 백제 왕권이 극도로 위축되고 귀족 세력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서구권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반달 왕국의 창시자이자 강력한 군주였던 가이세리크가 사망했다. 그는 서로마 제국을 약탈하고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여 반달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가이세리크가 죽은 뒤 그의 아들 훈네리크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훈네리크의 통치기에는 종교적 갈등이 심화되었으며, 가이세리크 사후 반달 왕국의 국력은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중국의 남북조 시대 중 남조의 유송 왕조에서는 황권의 몰락을 초래한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기 477년, 포악한 통치로 원성을 샀던 유송의 후폐제 유욱이 장군 소도성에 의해 살해당했다. 소도성은 유준(순제)을 황제로 옹립하며 조정의 전권을 장악했으며, 이는 훗날 유송이 멸망하고 남제가 건국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같은 시기 북조의 북위에서는 문명황후의 섭정 아래 한화 정책과 중앙 집권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수학적 관점에서 477은 홀수이자 합성수다. 477의 약수는 1, 3, 9, 53, 159, 477로 총 6개이며, 이들의 합은 702이다. 9와 53의 곱으로 소인수분해되므로 소수가 아니다. 또한 십진법에서 각 자릿수의 합이 18이 되어 9의 배수라는 특징을 지닌다. 천문학이나 공학 분야에서 특정한 지표나 번호로 사용되기도 하나, 수론적으로는 합성수로서의 성질 외에 특별한 수학적 정의를 갖는 경우는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