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년

477년은 율리우스력의 평년이다. 세계사적으로는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직후의 시기이며,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정치적, 영토적 과도기적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해이다. 동아시아에서는 한반도의 삼국시대 중반에 해당하며, 중국은 남북조 시대의 혼란과 권력 재편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반도의 백제에서는 심각한 정치적 혼란이 발생했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는 왕권이 크게 약화되어 귀족들의 세력이 강해진 상태였다. 477년, 웅진 천도를 주도했던 문주왕이 병관좌평 해구(解仇)에 의해 암살당하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해구는 자객을 시켜 사냥에 나섰던 문주왕을 살해했으며, 이후 문주왕의 13세 된 장남 삼근왕이 백제의 제23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삼근왕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백제의 실권은 해구를 비롯한 귀족 세력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같은 시기 고구려와 신라는 각자의 체제를 정비하며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고구려는 장수왕의 통치 아래 평양을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유지하며 한반도 중남부로의 진출을 계속해서 압박하고 있었다. 신라는 자비 마립간이 다스리고 있었으며, 고구려의 남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백제와의 나제동맹을 공고히 하는 한편, 주요 거점의 성곽을 보수하고 군사 방어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고구려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 신라와 백제는 생존을 위한 방어적 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유럽과 지중해 세계에서는 권력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476년 게르만족 출신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477년은 이탈리아 반도가 로마 황제가 아닌 이민족 통치자의 지배를 본격적으로 받게 된 첫해였다. 또한 북아프리카에 반달 왕국을 건국하고 로마를 약탈하며 지중해의 해상 패권을 장악했던 반달족의 위대한 군주 가이세릭(Geiseric)이 477년 1월에 사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아들 훈네릭(Huneric)이 왕위에 올랐으나, 가이세릭의 죽음은 반달 왕국의 점진적인 쇠퇴를 예고하는 중대한 분기점이 되었다. 한편, 동로마 제국의 황제 제논은 오도아케르를 이탈리아의 통치자로 사실상 용인하며 제국의 서방 영토 상실을 기정사실화했다.

중국의 남북조 시대 역시 각국의 내부 권력 이동이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북조를 대표하는 북위에서는 효문제가 재위하고 있었으나, 실제 권력은 적모인 문명태후(풍태후)가 섭정으로서 행사하고 있었다. 문명태후는 적극적인 개혁 정책과 한화(漢化) 정책의 기틀을 마련하며 북위의 중앙집권적 체제를 굳건히 정비해 나갔다. 반면 남조의 송(유송)은 순제가 재위 중이었으나 왕조의 명운이 다해가고 있었다. 실권자였던 군벌 소도성(蕭道成)이 군사력과 정치력을 장악하여 제위를 찬탈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었으며, 이는 불과 2년 뒤인 479년 남제(南齊)의 건국으로 이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