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은 470보다 크고 472보다 작은 자연수이다. 수학적으로는 홀수이며, 합성수이다. 소인수분해를 하면 3 × 157로 나타낼 수 있고, 이에 따른 약수는 1, 3, 157, 471로 총 4개이다. 471은 세 개의 연속된 소수의 합(151 + 157 + 163)으로 표현될 수 있는 수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서기 471년은 동아시아 정세에 큰 변화가 시작된 해이다. 중국 남북조 시대 북위의 제6대 황제인 헌문제 탁발홍이 퇴위하고, 그의 아들인 효문제 탁발굉이 불과 5세의 나이로 황제에 즉위하였다. 효문제는 훗날 낙양으로 천도하고 호복과 호어를 금지하는 등 적극적인 한화(漢化) 정책을 펼쳐 북위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로, 그의 재위 시작점인 471년은 북위 역사에서 중요한 기점이 된다.
한반도 역사에서 471년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팽팽하게 대립하던 삼국 시대의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당시 고구려는 장수왕의 강력한 남진 정책 하에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백제는 개로왕, 신라는 자비 마립간이 통치하고 있었다. 특히 신라 본기에 따르면 471년 2월에 명활성(明活城)을 증축하여 방어력을 높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고구려의 남하 압박에 대비하여 신라가 수도 서라벌의 방어 태세를 강화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서양사에서 471년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이 임박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당시 서로마 제국의 황제는 안테미우스였으나, 실권은 게르만 출신의 장군 리키메르가 장악하고 있었다. 황제와 실권자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며 내전의 위기가 고조되던 해였으며, 이는 5년 뒤인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과정의 전초 단계에 해당한다. 또한 동고트족의 테오도릭 대왕이 역사적 활동을 전개하던 초기 시점이기도 하다.
천문학 분야에서 471이라는 숫자는 NGC 471이라는 천체 명칭으로 사용된다. NGC 471은 물고기자리에 위치한 렌즈형 은하(Lenticular galaxy)로, 1879년 독일의 천문학자 빌헬름 템펠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은하는 지구로부터 약 1억 8천만 광년 떨어져 있으며, 일반적인 망원경으로는 관측하기 어렵지만 심우주 천체 목록의 하나로서 천문학 연구의 대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