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일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며, 서기 4세기의 49번째 해이다. 이 시기 동아시아는 중국의 5호 16국 시대가 절정에 달해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전쟁이 이어지던 때였으며, 서양에서는 로마 제국이 콘스탄티우스 2세와 콘스탄스 황제의 통치 하에 있었다. 특히 349년은 중국 화북 지방의 패권을 쥐고 있던 후조(後趙) 정권이 붕괴하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사건들이 발생한 해로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다.
중국 역사에서 349년은 후조의 황제 석호(石虎)가 사망하면서 대혼란이 시작된 해이다. 석호의 죽음 이후 태자였던 석세(石世)가 즉위했으나, 재위 33일 만에 팽성왕 석준(石遵)이 군사를 일으켜 석세를 폐위하고 살해한 뒤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그러나 석준 역시 재위 183일 만에 석감(石鑒)에게 살해당하고 제위를 빼앗기는 등, 1년 사이에 황제가 수차례 바뀌는 골육상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한족 출신의 장군 염민(冉閔, 당시 이름은 석민)이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며 훗날 염위(冉魏)를 건국하고 갈족을 학살하게 되는 기반을 다졌다.
한반도의 삼국 시대 상황을 살펴보면, 349년은 고구려 고국원왕 19년, 백제 계왕 4년, 신라 흘해 이사금 40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 고구려는 서쪽으로 전연(前燕)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는데, 전연의 모용황이 사망하고 모용준이 뒤를 이은 시점이었다. 후조의 붕괴로 인해 중국 북방의 힘의 공백이 생기자 전연은 중원으로 세력을 확장할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고구려와의 긴장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백제와 신라는 비교적 내부 체제 정비에 주력하던 시기였으나, 대륙의 정세 변화는 간접적으로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끼쳤다.
로마 제국에서는 콘스탄티우스 2세가 제국의 동부를, 콘스탄스가 서부를 통치하고 있었다. 349년은 서방 황제 콘스탄스의 통치 말기에 해당하며, 그의 인기가 점차 하락하고 있던 시점이다. 이는 이듬해인 350년 마그넨티우스가 반란을 일으켜 콘스탄스를 살해하고 제위를 찬탈하게 되는 정치적 불안의 전조가 나타난 해이기도 했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내부에서 아타나시우스파와 아리우스파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었으며, 이는 제국의 정치적 분열과도 맞물려 돌아갔다.
이 해에 사망한 주요 인물로는 앞서 언급한 후조의 3대 황제 석호가 있다. 그는 잔혹한 통치와 무리한 토목 공사, 잦은 전쟁으로 백성들을 피폐하게 만들었으며, 그의 사후 후조는 급격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또한 동진(東晉)의 황후 저산자(褚蒜子)가 섭정을 하던 시기로, 동진은 북방의 혼란을 틈타 북벌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349년은 거대한 제국이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기 직전의 과도기적 성격을 띠는 해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