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년

302년은 율리우스력으로 금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며, 육십갑자로는 임술년(壬戌年)에 해당한다. 한반도는 삼국 시대로 고구려 미천왕 3년, 백제 분서왕 5년, 신라 기림 이사금 5년에 해당한다. 중국은 서진(西晉) 혜제(惠帝) 태안(太安) 원년이며, 로마 제국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통치하던 사두 정치(Tetrarchy) 시기였다.

고구려 역사에서 302년은 미천왕의 대외 팽창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요한 해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따르면, 미천왕은 재위 3년째인 이 해 가을 9월에 직접 군사 3만 명을 이끌고 현도군(玄菟郡)을 공격하였다. 당시 고구려는 한사군의 축출과 영토 확장을 도모하고 있었으며, 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8천 명의 포로를 사로잡아 평양으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이는 고구려가 서북방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국력을 과시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중국 대륙에서는 서진 왕조의 내전인 '팔왕의 난'이 격화되고 있었다. 302년은 제왕(齊王) 사마경(司馬 冏)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였으나, 그의 독단적인 정치로 인해 다른 황족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하간왕 사마옹과 장사왕 사마예 등이 사마경 타도를 외치며 거병하였고, 이로 인해 서진의 국력은 급격히 쇠퇴하며 훗날 5호 16국 시대로 이어지는 혼란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로마 제국에서는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종교적인 통제를 강화하던 시기였다. 302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마니교를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그는 마니교를 페르시아의 첩자로 간주하고 제국의 전통적인 질서를 해치는 사교로 규정하여, 마니교 지도자들을 화형에 처하고 추종자들의 재산을 몰수하도록 명령했다. 이러한 종교적 탄압은 이듬해인 303년에 시작된 기독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의 전조가 되었다.

종교사적으로는 아르메니아의 기독교 공인과 관련된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아르메니아는 301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최초의 국가로 알려져 있으나, 역사학계 일부에서는 계몽자 그레고리오가 아르메니아의 카톨리코스(총대주교)로 서임되고 실질적인 교회 체계가 확립된 시점을 302년 무렵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이는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기 훨씬 이전에 이루어진 사건으로, 동방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