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식 총검(三十年式銃劍)은 구일본 제국 육군이 채택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시까지 사용한 대표적인 도검형 총검이다. 1897년(메이지 30년)에 아리사카 나리아키라가 설계한 30년식 보총과 함께 제식 채용되었으며, 이후 등장한 38식 보총 및 99식 보총 등 일본군의 주력 소총에 공통으로 장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총검은 일본군의 근접 전투 교리와 정신 전력을 상징하는 장비로 자리 잡았으며, 약 50년 동안 일본 제국군의 주력 제식 장비로 운용되었다.
총검의 전체 길이는 약 51cm이며, 칼날의 길이는 약 40cm에 달하는 장검 형태를 띠고 있다. 초기형 모델은 상대방의 총검을 받아내거나 걸어내기 위해 끝이 굽은 형태의 '갈고리형 십자 코등이(Hooked Quillon)'를 갖추고 있었으나, 실전에서의 실용성과 생산 효율성을 고려하여 전쟁 중기 이후부터는 직선형 코등이로 간소화되었다. 손잡이는 두 개의 목재 판을 리벳으로 고정하여 제작되었으며, 칼날은 빛의 반사를 방지하기 위해 흑색 산화 처리를 하거나 금속 광택이 나는 상태로 보급되었다.
생산 면에서는 도쿄 포병 공창을 비롯하여 고쿠라, 나고야 등의 주요 공창과 민간 위탁 공장에서 수백만 자루가 제조되었다. 또한 식민지였던 조선의 인천 육군 조병창과 만주의 봉천 조병창에서도 대량 생산이 이루어졌다. 생산 시기와 제조소에 따라 세부적인 형태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전쟁 초기에는 정교한 가공과 높은 마감 수준을 보여주었으나, 태평양 전쟁 말기에 생산된 소위 '말기형' 총검은 자원 부족과 공정 단축을 위해 혈조(Blood groove)가 생략되고 마감이 매우 거친 것이 특징이다.
30년식 총검은 러일 전쟁을 시작으로 제1차 세계 대전, 중일 전쟁,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이 개입한 모든 전장에서 사용되었다. 당시 일본 육군은 사격보다 백병전을 중시하는 돌격 전술을 강조하였는데, 30년식 총검은 이러한 총검도 교육의 핵심 도구였다. 일본군의 긴 소총에 장검형인 이 총검을 장착하면 전체 길이가 성인의 키와 맞먹을 정도로 길어졌으며, 이는 백병전 시 적군보다 더 긴 유효 거리를 확보하려는 전술적 의도가 반영된 결과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패망 이후에도 30년식 총검은 동아시아 전역에 막대한 재고가 남게 되었다. 이는 한국 전쟁 초기 대한민국 국군과 조선인민군 양측에서 재고 소총과 함께 보조 무기로 사용되었으며, 중국 내전에서도 공산군과 국민당군에 의해 널리 운용되었다. 오늘날 30년식 총검은 근대 동아시아 전쟁사를 상징하는 군사 유물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수많은 변형 모델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