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년은 3세기의 역사적 흐름, 특히 동아시아 삼국시대의 정세가 급격하게 변화한 중요한 해이다. 중국사에서는 촉한의 승상 제갈량이 위나라 정벌을 위한 제5차 북벌을 감행하다가 오장원(五丈原)에서 병사한 사건이 가장 유명하다. 제갈량은 위나라의 대장군 사마의와 대치하며 둔전(屯田)을 통해 장기전을 준비했으나, 과로와 병환이 겹쳐 54세를 일기로 진중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냈다'는 고사를 남겼으나, 실질적으로는 촉한의 북벌 정책이 동력을 잃고 삼국 간의 균형이 위나라 중심으로 기울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제갈량의 사후 촉한 내부에서는 심각한 내분이 발생했다. 제갈량이 후계 구도를 정리하고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군부의 실세였던 위연과 승상 부관 양의 사이의 갈등이 폭발했다. 결국 위연은 반역 혐의를 받고 마대에게 처형당했으며, 촉한의 군대는 한중으로 철수했다. 한편, 위나라 영토 내에서는 후한의 마지막 황제였던 헌제(산양공 유협)가 사망했다. 220년 조비에게 제위를 선양한 뒤 산양공으로 봉해져 조용히 지내던 그는 천수를 누리고 사망했으며, 위나라는 그를 한나라 황제의 예법에 맞춰 장사 지냈다.
한반도 역사, 특히 백제사에서도 234년은 왕위 계승과 국가 체제 정비의 기점이 되는 해이다. 백제의 제6대 왕인 구수왕이 재위 21년 만에 사망하자 그의 장남인 사반왕이 즉위했다. 그러나 사반왕은 나이가 어리거나 혹은 정치를 감당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폐위되었고, 초고왕의 동생인 고이왕이 왕위에 올랐다. 고이왕은 훗날 율령 반포, 관등제 정비, 관복 제정 등을 통해 백제를 부족 연맹체에서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로 발전시킨 핵심 군주로 평가받는데, 그의 집권이 바로 234년에 시작되었다.
이 외에 고구려에서는 동천왕 8년에 해당하며, 위나라와 오나라 사이의 대립 구도를 이용해 세력을 확장하려는 외교적 움직임이 지속되었다. 신라는 조분 이사금 5년에 해당한다. 서양사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황제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통치 말기에 해당한다. 당시 로마는 라인강 유역에서 게르만족의 일파인 알레만니족의 침입을 받고 있었으며, 황제는 친정(親征)에 나섰으나 군사적 해결보다는 매수를 통한 평화 협상을 시도하여 군대의 불만을 샀다. 이는 이듬해 황제의 암살과 '군인 황제 시대'의 도래로 이어지는 전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