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분 이사금

조분 이사금(助賁尼師今)은 신라의 제11대 국왕으로, 재위 기간은 230년부터 247년까지이다. 성은 석(昔)씨이며, 제9대 벌휴 이사금의 손자이자 골정(骨正) 갈문왕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옥모부인(玉帽夫人)이며, 왕비는 제10대 내해 이사금의 딸인 아이혜부인(阿爾兮夫人)이다. 기록에 따르면 조분은 키가 크고 용모가 수려하였으며, 임기응변에 능하여 사물의 이치를 잘 판단하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즉위 과정은 신라 초기 석씨 왕실의 계승 구도를 보여준다. 부친인 골정이 일찍 사망함에 따라 사촌인 내해 이사금이 먼저 왕위에 올랐으나, 내해 이사금이 230년에 사망하면서 유언에 따라 조분이 사위이자 조카의 자격으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는 당시 신라 사회에서 족내혼이 성행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즉위 원년에는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고 백성들을 위로하는 등 민심을 수습하는 데 주력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대외적으로는 왜(倭)와 고구려의 침입에 맞서 잦은 전쟁을 치렀다. 232년 4월, 왜병이 수도인 금성을 포위하자 왕이 직접 출전하여 적을 격퇴하고 1천여 명을 사살하거나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듬해인 233년에도 왜가 동쪽 변경을 침범했으나, 당시 이찬이었던 석우로(昔于老)가 사도(沙道)에서 화공(火攻)을 펼쳐 왜선을 불태우고 적병을 수장시켰다. 245년에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공하였는데, 석우로가 군사를 이끌고 나갔으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마두책(馬頭柵)을 지키는 등 북방 정세는 불안정하였다.

내치에 있어서는 친족인 석우로를 대장군으로 임명하여 군사권을 장악하게 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골품제와 관등 조직이 점차 정비되는 양상을 보였으며, 김알지의 후손인 김씨 세력이 점차 정계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과도기적 모습을 띠었다. 《삼국사기》에는 재위 기간 중 가뭄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기록과 함께, 시조묘에 참배하거나 지방을 순행하며 농사를 장려한 기록이 남아 있어 농업 생산력 증대에도 관심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조분 이사금은 247년 5월에 승하하였다. 그가 사망한 뒤 왕위는 아들이 아닌 동생 첨해 이사금에게 이어졌다. 이는 당시 왕위 계승 원칙이 부자 상속보다는 형제 상속이나 족내 유력자 계승이 우선시되었음을 시사한다. 그의 무덤에 대한 정확한 위치는 전해지지 않으나, 경주 시내의 고분군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치세는 지속적인 외침 속에서도 신라가 국가적 기틀을 유지하고 방어 체계를 확립해 나가는 시기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