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파운더(Ordnance QF 2-pounder)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영국군이 주력으로 운용한 대전차포이자 전차포다. 구경은 40mm이며, 명칭은 포탄의 무게가 약 2파운드(약 900g)였던 것에서 유래했다. 1930년대 중반 비커스(Vickers) 사에 의해 설계되어 1936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등장 당시에는 동시대의 다른 대전차포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우수한 관통력과 정밀도를 갖춘 최신 무기로 평가받았다. 영국 육군은 이 포를 보병용 대전차포뿐만 아니라 마틸다 II, 밸런타인, 크루세이더 등 초기 주력 전차의 주포로 채택하여 운용했다.
보병용 대전차포로 사용될 당시 2파운더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삼각대 형식의 포가(carriage) 구조다. 이 구조 덕분에 포를 방열한 상태에서 사수는 포신을 360도 전 방향으로 신속하게 회전시킬 수 있었으며, 이는 이동하는 적 전차를 추적하여 타격하는 데 매우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러한 복잡한 포가 구조는 제작 비용을 상승시켰고 포 자체의 무게를 무겁게 만들어, 긴박한 전투 상황에서 인력으로 포를 신속하게 이동시키거나 재방열하는 데 어려움을 주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전술적 운용 측면에서 2파운더의 치명적인 한계는 고폭탄(HE)의 부재였다. 당시 영국군의 교리는 전차포와 대전차포의 역할을 적 전차 격파에만 집중시켰기 때문에, 대인 살상이나 진지 파괴에 필요한 고폭탄을 거의 지급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2파운더를 장착한 전차나 대전차포 부대는 적의 대전차포 진지나 보병 매복 구역을 발견하더라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으며, 이는 실전에서 많은 피해를 야기하는 원인이 되었다. 전쟁 중반에 이르러서야 고폭탄이 일부 보급되었으나, 이미 화력 자체가 부족해진 시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인 프랑스 침공과 북아프리카 전역 초기에 2파운더는 독일군의 1호, 2호 전차는 물론 3호, 4호 전차의 초기형 장갑을 충분히 관통할 수 있는 성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독일군이 전차의 장갑을 강화하고 50mm 대전차포 등을 실전에 배치하기 시작하자 40mm 구경의 2파운더는 빠르게 위력을 잃어갔다. 특히 북아프리카의 개활지에서 사거리와 관통력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영국군은 이를 대체하기 위해 더 강력한 6파운더(57mm) 대전차포의 보급을 서두르게 되었다.
2파운더는 주력 대전차포의 지위를 상실한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포구 속도를 높여 관통력을 강제로 끌어올리는 리틀존 어댑터(Littlejohn adaptor)를 장착하여 경전차나 장갑차의 주포로 사용되었으며, 태평양 전선에서는 일본군의 전차 장갑이 얇았기에 전쟁 종결 시까지 현역으로 머물 수 있었다. 비록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전성기는 짧았으나, 2파운더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영국군의 대전차 전력을 지탱한 핵심 화기였으며 이후 등장하는 6파운더와 17파운더 개발의 기술적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