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마른 전투

제2차 마른 전투는 제1차 세계 대전 후기인 1918년 7월 15일부터 8월 6일까지 프랑스 마른강 인근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투다. 이 전투는 독일 제국군이 시도한 마지막 대공세이자,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은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독일의 에리히 루덴도르프 장군은 연합군을 분쇄하고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평화 공세(Friedensturm)'를 계획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독일의 패배와 전쟁의 주도권 상실로 이어졌다.

독일군은 7월 15일 새벽, 대규모 포격을 시작으로 공세를 개시했다. 그들의 목표는 랭스 지역을 포위하고 프랑스군의 전선을 돌파하여 파리로 진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합군은 독일군의 공격 계획을 사전에 파악하고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두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전방 배치 인원을 최소화하고 후방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는 종심 방어 전략을 구사하여 독일군의 초기 충격을 효과적으로 완화했다.

독일군의 공세가 한계에 다다른 7월 18일, 연합군 총사령관 페르디낭 포슈는 대대적인 반격을 명령했다. 이 반격에는 프랑스군을 주축으로 영국군, 이탈리아군, 그리고 대규모로 증원된 미국 원정군이 참여했다. 특히 수백 대의 르노 FT 경전차를 동원한 기동전과 강력한 항공 지원은 독일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연합군은 독일군을 마른강 이북으로 밀어내며 전선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미국 원정군(AEF)의 본격적인 참여는 이 전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약 30만 명에 달하는 미군 병력이 전투에 투입되어 연합군의 소모된 전력을 보강하고 사기를 높였다. 미군은 비록 전투 경험은 부족했으나 강력한 병력과 자원을 바탕으로 독일군의 공세를 막아내고 반격의 선봉에 섰다. 이는 독일군에게 인적 자원의 고갈이라는 심각한 압박을 주었으며, 독일 지도부가 전쟁의 승산이 없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2차 마른 전투의 결과로 독일군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다. 독일은 더 이상 대규모 공세를 펼칠 능력을 상실했으며, 전선의 주도권은 연합군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이 승리는 이후 연합군의 '백일 공세'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고, 결국 1918년 11월 독일의 항복과 종전으로 연결되었다. 마른강에서의 승리는 연합군에게는 승전의 확신을, 독일군에게는 패배의 전조를 알린 결정적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