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재보궐선거

1997년 재보궐선거는 대한민국 제15대 국회 임기 중인 1997년에 실시된 국회의원 재선거 및 보궐선거를 의미한다. 이 선거는 김영삼 정부의 임기 말기에 치러졌으며, 같은 해 12월 18일에 예정된 제15대 대통령 선거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전초전으로서 매우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정국은 노동법 날치기 통과 파동과 한보 그룹 부도 사태, 김현철 비리 의혹 등으로 인해 여당인 신한국당에 대한 민심이 크게 악화된 상태였다.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선거는 3월 5일에 실시된 재보궐선거였다. 인천 서구, 경기 안양시 만안구, 경북 포항시 북구 등 3곳에서 치러진 이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신한국당은 전패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맞이했다. 인천 서구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 조한천 후보가, 안양 만안에서는 자유민주연합 김일주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특히 여권의 전통적 텃밭인 포항 북구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태준 후보가 신한국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는 대구·경북(TK) 지역의 민심이 김영삼 정부로부터 이탈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으며, 여당 내의 권력 지형 변화와 야권의 정권 교체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7월 24일에는 충남 천안시 갑과 경북 영양군·봉화군·울진군 등 2개 선거구에서 재보궐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는 신한국당이 경북 지역을 수성하고, 자유민주연합이 충청 지역을 지켜내며 각자의 지지 기반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었다. 이어 9월 4일에 치러진 경기 안양시 동안구 갑 재선거에서는 신한국당이 승리하였으나, 이미 정국은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든 상태였고 여당 내에서는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 등이 불거지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15대 대통령 선거일인 12월 18일, 광주 동구에서 보궐선거가 대선과 동시에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당선과 함께 새정치국민회의 이영일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로 국회에 입성했다. 종합적으로 1997년 재보궐선거는 '문민정부'의 실정과 레임덕을 확인시켜 주었으며, 김대중 총재를 중심으로 한 야권의 DJP 연합(김대중-김종필 연대)이 힘을 얻는 과정과 맞물려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 여야 정권 교체로 이어지는 정치적 흐름을 예고한 선거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