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재보궐선거는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의 결원을 충원하기 위해 실시된 선거다. 이 선거는 주로 1994년 8월 2일에 치러진 선거를 의미하며, 당시 김영삼 정부 출범 2년 차를 맞아 문민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적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여당인 민주자유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 그리고 박철언 등이 주도한 신민당 등이 격돌하여 정국 주도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선거가 실시된 주요 지역구는 서울 구로구 갑, 대구 수성구 갑, 강원도 영월군·평창군 등 총 세 곳이었다. 서울 구로구 갑은 도시 서민층의 표심을 확인할 수 있는 지역이었고, 대구 수성구 갑은 여권의 핵심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TK) 정서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강원 영월·평창은 농촌 지역의 민심을 파악할 수 있는 곳으로 각 정당은 이들 지역의 승리를 위해 당력을 집중했다.
선거 결과 여당인 민주자유당은 단 한 곳에서만 승리하며 사실상 패배했다. 서울 구로구 갑에서는 민주당 이근희 후보가 민주자유당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으며, 대구 수성구 갑에서는 신민당의 현경자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특히 현경자 후보는 옥중에 있던 박철언 전 의원의 부인으로서, 정권의 압박에 대한 동정 여론과 지역주의 정서를 결합해 당선에 성공했다. 민주자유당은 강원 영월·평창에서 김용채 후보가 당선되는 데 그쳐 체면을 겨우 유지했다.
이 선거 결과는 당시 김영삼 정부에 큰 정치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여권의 텃밭으로 인식되던 대구에서의 패배는 문민정부의 개혁 동력에 대한 민심의 경고로 해석되었다. 또한 야권은 서울과 대구에서의 승리를 발판 삼아 정국 주도권을 강화할 수 있었으며, 이는 이듬해 실시된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소야대 형국이 나타나는 전조 현상으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1994년 재보궐선거는 기존 정당 구도에 균열을 일으키고 지역주의와 정권 심판론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준 사례다. 민주자유당 내부에서는 지도부 책임론과 정계 개편 논의가 머리를 들기 시작했고, 야권은 단일화와 연대의 필요성을 재확인하며 차기 선거를 대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선거는 1990년대 중반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