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92 농구대잔치는 대한농구협회가 주관하여 1991년 말부터 1992년 초까지 진행된 대한민국 성인 농구 최상위 리그 대회다. 이 시즌은 한국 농구가 1990년대 중반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전성기로 진입하기 직전의 과도기적 성격을 띠면서도, 실업 강호들의 건재함과 대학 팀들의 약진이 공존했던 중요한 시기였다. 특히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 실업 빅3의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기아자동차의 독주 체제가 확고히 굳어진 시즌으로 평가받는다.
대회의 우승은 '기아 왕조'를 구축한 기아자동차가 차지했다. 최희암 감독이 이끄는 기아자동차는 허재, 강동희, 김유택, 한기범이라는 당대 최고의 라인업, 이른바 '허-동-택-범' 라인을 앞세워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했다. 이들은 높이와 스피드, 기술을 모두 갖춘 완성형 팀으로 군림하며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에서 타 팀들을 압도했고, 결국 대회 4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팀의 에이스 허재는 절정의 기량을 뽐내며 MVP(최우수선수상)를 수상, 한국 농구 최고의 스타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 시즌은 대학 농구의 돌풍이 본격적으로 감지된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최희암 감독(연세대)의 지휘 아래 문경은, 정재근, 오성식 등이 주축이 된 연세대학교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당시 신입생이었던 문경은의 가세로 외곽포까지 장착한 연세대학교는 기존 실업 팀들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했으며, 이는 훗날 1993-94 시즌 연세대의 사상 첫 우승과 농구대잔치 신드롬의 발판이 되었다. 대학 팀들의 빠르고 패기 넘치는 플레이는 농구장을 찾는 10대, 20대 팬들을 급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결승전(챔피언 결정전)은 기아자동차와 삼성전자의 맞대결로 펼쳐졌다. 김현준이 이끄는 삼성전자는 전통의 명가로서 기아자동차의 독주를 막기 위해 분전했으나, 기아자동차의 조직력과 허재의 해결사 능력을 넘어서지 못했다. 기아자동차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3승 무패를 기록하며 비교적 손쉽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현대전자 역시 이충희의 부상 공백 등으로 인해 기아의 아성을 넘는 데 실패하며 실업 농구는 기아자동차의 천하임을 재확인했다.
1991-92 농구대잔치는 경기 내적인 수준 향상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시즌이었다. 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과 높아진 TV 중계 시청률은 농구가 야구, 축구와 더불어 국내 3대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대회는 실업 팀의 노련미와 대학 팀의 패기가 조화를 이루며 한국 농구 르네상스의 서막을 알린 역사적인 시즌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