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1월 7일에 실시되었다. 이 선거는 전시 상황에서 치러진 국가적 행사로, 현직 대통령인 민주당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공화당의 토머스 E. 듀이가 격돌하였다. 루스벨트는 전례 없는 4선에 도전하며 전쟁의 승리와 전후 질서 구축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공화당 후보인 듀이는 뉴욕주 주지사 출신으로, 행정부의 쇄신과 젊은 지도력을 강조하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민주당 내에서는 루스벨트의 건강 문제가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 이로 인해 부통령 후보 선정 과정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기존의 부통령이었던 헨리 월리스는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는 당내 비판을 받았고, 결국 온건파이자 당내 지지 기반이 탄탄했던 해리 S. 트루먼이 새로운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이는 루스벨트 유고 시의 안정적인 권력 승계와 당내 화합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루스벨트는 전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며 유권자들에게 '말을 갈아타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공화당의 토머스 E. 듀이는 루스벨트 행정부의 장기 집권에 따른 피로감과 관료주의적 비효율성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루스벨트 주변의 인물들을 '지친 노인들'이라 지칭하며 정부의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듀이는 전쟁 수행 자체에는 동의했으나, 전쟁 이후의 경제 재건과 국내 문제 해결에 있어 더 젊고 유능한 지도자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듀이는 40대의 젊은 나이를 앞세워 전국적인 유세를 펼치며 민주당을 압박했으나, 전시 상황에서 지도자를 교체하는 것에 대한 대중의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투표 결과,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선거인단 432명을 확보하며 99명에 그친 듀이를 압도적인 차이로 꺾고 승리했다. 일반 투표에서도 루스벨트는 약 53.4%를 득표하여 당선을 확정 지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대통령 4선 당선 기록이었다. 비록 1940년 선거에 비하면 득표 격차가 줄어들었으나,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루스벨트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공화당의 정권 교체 열망보다 강력했음을 입증한 결과였다.
1944년 선거의 승리로 루스벨트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종결과 국제연합(UN) 창설 등의 과업을 이어갈 동력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네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불과 82일 만인 1945년 4월에 뇌출혈로 급거 서거했다. 이에 따라 부통령이었던 해리 S.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전쟁의 마무리와 전후 냉전 체제의 서막을 열게 되었다. 이 선거는 전시 민주주의의 건전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미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루스벨트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