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년은 율리우스력의 평년이다. 세계사적으로 이 시기는 동아시아와 지중해 세계 모두에서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준비되던 중요한 해였다. 중국에서는 후한의 붕괴가 가속화되며 군벌들의 각축전이 본격화되었고, 로마 제국에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후 쇠퇴기를 맞은 콤모두스 황제 통치 말기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반면 한반도의 고구려에서는 왕권 강화와 체제 정비를 위한 중대한 정치적 결단이 이루어졌다.
한국사에서 191년, 즉 고국천왕 13년은 고구려의 정치적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다. 고국천왕은 기존 귀족 세력의 전횡을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평민 출신이면서도 지혜롭고 강직한 성품을 지닌 압록곡의 농부 을파소를 발탁하여 국상의 자리에 임명한 것이 바로 이 해의 일이다. 기존 귀족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을파소는 성공적으로 국정을 운영했으며, 이는 훗날 빈민 구제 제도인 진대법이 실시될 수 있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치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 후한 말기인 191년은 반동탁 연합군과 동탁 세력 간의 충돌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손견이 이끄는 군대는 양인 전투에서 동탁군을 크게 격파하고 마침내 수도 낙양에 입성했다. 그러나 동탁은 이미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한 후였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문화재와 기록이 소실되었다. 한편 반동탁 연합군은 공통의 목표를 상실한 채 내분에 휩싸였고, 원소가 한복을 몰아내고 기주를 장악하는 등 각지의 군벌들이 영토 확장을 위해 서로 다투는 군웅할거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로마 제국에서는 콤모두스 황제의 기행과 폭정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특히 191년 로마 시내에는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여 도시의 많은 부분이 잿더미가 되었다. 이 화재로 인해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세워져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평화의 신전과 베스타 신전 등 로마의 주요 건축물들이 파괴되었다. 이 재난은 로마 시민들의 불안을 가중시켰고 황제의 권위는 더욱 추락했다. 콤모두스는 화재 이후 재건된 로마를 자신의 이름을 딴 콜로니아 콤모디아나로 개명하려 하는 등 과대망상적 행보를 보였고, 이는 이듬해 그가 암살당하고 로마가 내전에 휩싸이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종합하자면 191년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 양 끝에서 뚜렷한 역사의 변곡점이 형성된 시기다. 로마 제국은 화재와 황제의 폭정으로 인해 곧 다가올 다섯 황제의 해라는 내전의 불씨를 키우고 있었고, 중국은 후한 왕조의 실질적인 멸망과 함께 삼국지의 무대가 되는 길고 긴 난세로 접어들었다. 반면 고구려는 신분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파격적인 인재 등용을 통해 국가 체제를 정비함으로써, 주변국의 극심한 혼란과 대비되는 안정적인 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