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 대한민국

1904년은 대한제국이 대내외적으로 극심한 격변을 겪은 해였다. 연초인 1월, 대한제국 정부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국외 중립'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하던 일본에 의해 묵살되었다. 2월, 인천 앞바다와 뤼순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며 러일전쟁이 발발하였고, 한반도는 이들의 주요 전장이자 병참 기지로 전락하였다.

일본은 전쟁 발발 직후 무력으로 한양을 점령하고 대한제국 정부를 압박하여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 따라 일본은 군사 작전상 필요한 대한제국의 영토를 수시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였으며, 대한제국의 내정에도 간섭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는 대한제국의 중립 선언을 무력화하고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행위였으며, 이후 전개될 본격적인 식민지화의 서막이 되었다.

같은 해 8월, 일본은 제1차 한일협약을 강제로 체결하며 이른바 '고문 정치'를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재정 고문으로 메가타 다네타로, 외교 고문으로 미국인 더럼 스티븐스가 부임하여 대한제국의 국가 행정 전반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특히 메가타는 이후 화폐 정리 사업 등을 주도하며 한국의 경제 체계를 일본에 예속시키는 데 앞장섰으며, 스티븐스는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침략 행위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일본의 침탈에 맞선 민중의 저항과 사회적 변화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일본이 대한제국의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하자, 이에 반대하기 위해 '보안회'가 조직되어 격렬한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고 결국 일본의 요구를 철회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양기탁과 영국인 베델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여 일본의 침략상을 고발하고 항일 여론을 조성하는 등 언론을 통한 구국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사회 기반 시설 측면에서는 일본이 전쟁 수행과 물자 수탈을 목적으로 경부선 철도 부설을 강행하여 완공 단계에 이르렀다. 한편, 의료 분야에서는 미국의 선교사 알렌 등의 노력으로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이 준공되어 근대적 의료 체계의 기틀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1904년의 대한제국은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속에서 국권이 훼손되는 위기를 겪는 동시에, 민족적 저항과 근대적 변화가 교차하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