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일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며, 서기 2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해이다. 육십갑자로는 계해년(癸亥年)에 해당한다. 로마 제국에서는 콤모두스 황제의 통치기가 이어졌고, 중국 후한에서는 영제 광화 6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동서양의 거대 제국들이 내부적인 정치 불안과 부패, 반란의 조짐으로 인해 쇠퇴기로 접어드는 과도기적 성격을 띤다.
로마 제국에서는 황제 콤모두스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하여 정치적 긴장이 극에 달했다. 콤모두스의 누이인 루킬라(Lucilla)가 주도하고 원로원 의원들이 가담한 이 음모는 황제가 극장에 입장할 때 실행될 예정이었으나, 암살자가 무기를 꺼내며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다. 이 사건으로 인해 루킬라와 관련자들은 처형되거나 유배되었으며, 콤모두스는 원로원을 깊이 불신하게 되었다. 이는 콤모두스가 이후 폭정을 일삼고 국정을 측근들에게 맡기며 로마의 쇠락을 가속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중국 후한(後漢) 말기인 이 해에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의 전조 현상들이 나타났다. 거록 출신의 장각(張角)은 스스로를 '대현양사(大賢良師)'라 칭하며 태평도(太平道)라는 종교 조직을 통해 세력을 급격히 확장하고 있었다. 그는 질병 치료와 부적을 통해 민심을 사로잡았으며, 183년 무렵에는 이미 수십만 명의 신도를 확보하여 조직적인 봉기를 준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조정의 부패와 환관들의 전횡으로 인해 피폐해진 농민들은 장각의 교리에 쉽게 동조하였고, 이는 다음 해인 184년에 대규모 농민 반란으로 폭발하게 된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가 진행 중이었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기 체제를 정비하고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제9대 고국천왕 5년으로, 왕권 강화를 모색하던 시기였다. 백제는 제5대 초고왕 18년이었으며, 신라와 잦은 분쟁을 겪으면서도 국가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신라는 제8대 아달라 이사금 30년에 해당하며, 아달라 이사금의 치세 말기였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이 시기 각국은 대규모 전쟁보다는 내부 결속이나 국지적인 방어에 치중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종교 및 사상사적으로 183년은 안티오키아의 주교이자 초기 기독교 호교론자인 테오필루스(Theophilus)가 사망한 해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는 이교도 사상에 맞서 기독교 교리를 변증하는 저술을 남겼으며, '삼위일체(Trinity)'라는 용어를 헬라어로 처음 사용하여 신학적 기틀을 마련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동양에서는 앞서 언급한 태평도가 도교의 초기 형태로서 민중 속에 깊이 파고들며, 종교가 정치적 변혁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