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년은 서기 2세기에 해당하는 평년으로, 동양에서는 후한 왕조의 쇠퇴가 가속화되던 시기였으며 서양에서는 로마 제국이 콤모두스의 통치 하에 놓여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각자의 영토를 다지며 국가 기틀을 유지하던 시기였다. 이 해는 훗날 중국 삼국시대의 운명을 결정지을 주요 인물들이 탄생한 해로도 기록된다.
중국 후한에서는 영제(靈帝)가 재위 중이었으나, 환관 세력인 십상시의 발호와 지방 호족들의 성장이 맞물려 중앙 집권 체제가 점차 붕괴되고 있었다. 특히 181년에는 후한의 강력한 환관이었던 조절(曹節)이 사망하며 권력 구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훗날 후한의 마지막 황제가 되는 헌제 유협(劉協)이 이 해에 태어났으며, 촉한의 전설적인 승상 제갈량(諸葛亮) 역시 181년에 낭야군에서 출생하여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준비를 시작했다.
로마 제국에서는 전년도에 서거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콤모두스가 단독 황제로서 통치를 이어가고 있었다. 5현제 시대의 마지막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후, 콤모두스의 등장은 로마 제국의 황금기가 저물고 혼란과 쇠퇴의 시대로 접어드는 분기점으로 평가받는다. 181년 당시 콤모두스는 아직 통치 초기였으나, 점차 정무를 소홀히 하고 원로원과의 갈등을 빚기 시작하며 제국의 안정을 해치고 있었다.
한반도의 정세를 살펴보면, 고구려에서는 제9대 고국천왕이 재위 3년 차를 맞아 왕권을 강화하고 있었다. 고국천왕은 부족 중심의 체제를 행정 구역 중심의 5부 체제로 개편하는 과정을 추진하며 중앙 집권화를 꾀하였다. 신라에서는 제8대 아달라 이사금의 치세가 이어졌으며, 백제에서는 제5대 초고왕이 영토 확장과 국방 강화에 주력하며 주변 세력과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던 시기였다.
종합적으로 181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존의 안정적인 통치 질서가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의 고요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삼국지 시대의 주역들이 태어남으로써 거대한 변혁의 씨앗이 뿌려졌고, 유럽에서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해였다.